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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탈국(脫國)수기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내가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하여 쓰여졌다.

 

눈을 감으면 아직도 내 눈에는 생생하게 그 광경이 펼쳐진다. 알몸이 되어 맞는 듯 한, 날 선 바람, 에이다 못해 정육점의 고기처럼 차갑게 얼은 살, 감각이 없는 발과 삶의 끝에 도달한 것만 같은 절박함과 절망감, 간절함.

그리고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차가운 그의 손. 오로지 형태로서만 온전히 내가 잡았던 것이 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그의 손은 온도를 상실하고 있었다. 차가운지, 뜨거운지. 우리는 그것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뜨겁게 흘러내려 곧 맞바람에 얼음처럼 퇴색되는 땀이, 단지 우리가 어쩌면 땀을 흘릴 정도로 뛰어왔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아니었던가. 눈앞에 시각화되어 놓여져 있던 두 삶의 갈림길에서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껴 흘렸던 땀이었던가. 나는 알 수 없었다. 삶의 끝. 그리고 삶의 연장선. 그 앞에 서 있었던 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밤은 시꺼먼 아가리를 벌리고 우리를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때를 봐야 했다. 동이 터올 때도 아닌, 아직 농익지 않은 밤도 아닌, 적당한 때. 달빛이 밝아서도 안 되며, 작은 짐승들마저도 깊은 잠에 빠져 있어야 하며, 나뭇잎 자락마저도 소리를 질러서는 안 될 그런 때. 나와 내 친구는 그 때만을 기다려 왔다. 그리고 몇 년 간, 아니, 내 인생 평생을 바쳐 기다려 온 그 순간이 성큼 성큼 큰 발자국을 내어 우리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마른 혓바닥 위에선 굴러갈 침조차 없었다. 목이 텁텁해졌지만, 기침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친구의 손을 고쳐 잡았다. 친구는 덜덜 떨고 있었다. 며칠 째 풀뿌리와 강물밖에 퍼먹지 못한 친구는 몸에 남아있던 모든 수분을 모조리 뿜어낼 기세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손에 땀이 흥건해질 때마다, 나는 친구의 손을 내 바지에 닦아 주었다. 함께 달리다가 손이 미끄러져 놓치기라도 하면 낭패였다. 나는 내 몸까지 전이되는 친구의 긴장과 공포심에, 크게 떨리는 친구의 손을 꽉 쥐었다.

때가 오고 있었다.

친구도 그걸 느낀 모양이었다. 친구가 나를 보았다. 어두운 숲 속, 가장 심연 같은 어둑한 곳에 숨어 있는 우리였지만 순간 달빛이 반사된 것인지, 얼음이 비춘 것인지 친구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물이 그렁그렁한 눈동자.

나는 맘이 쓰라려졌다. 친구는 약했다. 나약한 녀석이었다. 초식동물 같은 눈을 한 녀석이, 이곳을 벗어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과 너무 많은 담력, 그리고 너무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많은 주저와 망설임, 두려움. 그 끝에 친구는 내 손을 붙들었다. 친구는 내 손을 붙들기 위해, 내 손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렸다. 두려움과 공포, 그의 생활, 친구, 친지, 가족, 그리고 임시적으론 자신의 목숨마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른 점이라면, 그가 그 모든 것들을 자의적으로 유기한 반면, 나는 그와 이 모든 것을 계획하고 실행한 순간에, 이미 그 모든 것을 잃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둘은 모두 서로에게 의무가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선택한 이 손을, 무슨 일이 있더라고 놓지 않을 의무.

나는 다시 한 번 친구를 보았다.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공포심에 저절로 떨어져 내리는 눈물인 듯 했다. 나는 손으로 그 눈매를 닦아 주었다. 거칠은 피부가 맞닿았다. 나는 친구의 피부를 알고 있었다. 보드랍고, 비단결 같았던 피부를. 지금은 거칠게 다가오는 그 피부와, 역시나 거칠은 내 엄지 사이에 윤활이 되어주는 그 물기를 말없이 훔쳤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았다. 우리는 말을 할 수 있을만한 풍족한 입장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도망자였으며, 조국의 배신자였고 1급 범죄자였다. 평범한 일생에서 도망자가 되고 배신자, 범죄자가 되기까지 우리는 함께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모든 것을 눈빛으로 통할만 한, 그런 사이가 되어있었다.

내내 구름들 사이로 술래잡기 하듯 요리조리 놀래던 달이 구름 사이로 사라져가고 있었다. 우리가 기다려오던 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콧잔등으로 땀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때다!!!

나는 친구의 뺨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얼어붙은 강을 향해 우리 둘은 함께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얼은 흙보다도 더 시린, 강물 바닥이 곧 발바닥에 와 닿았다. 환희와 공포심으로 인한 전율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드디어, 밟은 것이다. 결국, 내딛은 것이다. 그 딱딱한 바닥에! 그 시린 얼음에!! 우리의 최후가, 그리고 최초가 될 수 있을 그 강에

신이시여!!

눈을 질금 감을 뻔 했지만, 나는 강한 의무감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우리 둘은 허리를 숙이고 강을 가로 지르기 시작했다. 늪을 건너는 것만 같았다. 끝이 없는 늪으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이 푹푹 빠지는 것 같았다. 강은 고요했다. 고요히 우리 둘을 삼켜가는 것 같았다. 말이 없이, 우리를 도망자인 우리를 숙청하는 것 같았다. 발바닥과 얼음의 마찰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강은 우리를 토해내고 싶었던 걸까. 탁 탁 탁. 뛰는 소리가 심장까지 턱턱 공명했다.

강을 짓밟으며 반쯤 넘어갈 때였다. 우리의 발이, 환하게 비추어졌다.

“저 놈들 봐라!! 저놈들 잡아라!!!!”

심장이 내려 앉아 깨부숴지는 것 같았다. 아니면, 급속도로 냉각되는 것 같았다. 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멈춰선 건지조차 알 수 없었다. 친구가 옆에서 짤막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흐윽, 하고 삼켜버린 울음 소리에 나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우리는 다 버렸다. 목숨마저 버리게 하지는 마!!!

나는 친구의 손을 꽉 흡착하여 쥐어 붙들고, 저주할 그 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여 내달렸다. 우리를 추격하는 지긋지긋한 병사들을 떨쳐버릴 듯이. 발뒤꿈치에 바싹 따라오며 입을 쩍 벌린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버릴 듯이!!

탕!!!

탕 탕!!!!

뒤에서 총성이 울려왔다. 땅과 하늘이 뒤집어 지는 것 같았다. 친구가 멈칫했다. 나는 그 손을 끌었다. 어느 새 나도 친구도 땀에 흠뻑 젖어있었고 친구의 손은 자꾸 미끄러져 내렸다. 하지만 여기서 손을 놓을 순 없었다. 친구의 목숨은 나의 목숨에 상응했다. 친구를 잃는다면 목숨조차 소용이 없었다.

아!!

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쪽에서 산기슭이 보이기 시작했다. 숨이 차오른 입에서는 숨이 내뿜어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색 되어갔다. 시야가 사라지고 있었다. 새하얗게. 장님이 되어가는 걸까. 아니면 총알이 내 눈알을 관통한 걸까. 내 숨이, 그리고 시야가 사라져 간다. 그리고 반대편, 그 우리의 삶을 가로지르는 그 결승선, 그리고 경계선으로 도달하기 바로 전, 마치 죽기 전처럼 내 머릿속에서는 그 옛날의 잔상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

나와 친구는 고위층의 자녀였다. 그렇기에 그곳에서 우리가 탈출하려 했다는 얘기를 한다면 누군가는 분명 비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그랬다. 우리는 최소한 나무껍데기를 벗겨먹을 정도로 굶주려 본 적이 없었으며, 우리의 살림을 도와줄 사람 또한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웠다. 나는 그곳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우는 제1대학을 졸업했으며, 친구는 그곳의 음악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제1 연구원의 연구원으로서 벌어먹고 있었고, 6년 전에는 결혼을 하여 꽃 같은 아내와 사랑스러운 아이 하나가 있었다. 나의 아내. 들판에 핀 민꽃같이 수수하고 우아했었던 내 아내. 나는 행복하고도 풍족한 가정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누구나 누릴 수는 없는, 평범한 생활.

그 평범한 생활의 첫 변화는, 유학 갔던 친구가 돌아오면서 시작됐다. 친구는 나와 어릴 적부터의 친구였다. 우리 둘은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친한 친구 사이로 자라났다. 사실 친구는 나보다 한 살 적었다. 나를 형이라 불러 왔지만, 표면적으로는 우린 가장 친한 친구와도 같았다.

친구의 집안은 학자집안인 우리 집과는 달리, 대대로 군사계통으로 유서가 깊은 집안이었다. 친구의 할아버지는 수령의 국방장군이었고, 친구의 아버지 또한 장군이었으며, 친구의 친척들 모두 그러했다. 하지만 친구는 달랐다. 친구는 어릴 적부터 마음이 심약했으며, 보드랍고 오동통한 손은 건반을 두드리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친구는 기차 장난감이나, 병정 인형, 총 같은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는 가을같이 쓸쓸한 음악을 사랑했고, 나에게 피아노로 가끔씩 이름 모를 곡들을 들려주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음악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 나라 대부분은 잠이 들었지만, 간혹 친구가 쳐주는 곡에는 심연 깊은 그 어딘가를 눅진하게 눌러오는 그런 곡들이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곡명과 작곡가를 물었지만, 친구는 번번이 말해줘도 모를 거라며 웃고 넘어가고는 했다. 친구는 항상 어딘가가 아련했다. 자주 나약한 미소를 보여주며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줬던 친구는, 그 까닭에 오래전 잃어버렸던 동생 같기도 했고, 애틋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약 8년 전 즘이었다. 친구는 갑작스레 외국의 어느 나라로 유학을 갔다. 유럽의 어디라고 했다.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친구는 알려줄 수가 없다고 했다. 친구는 눈물을 흘렸다. 그때 처음 친구의 눈물을 봤다. 친구는 나와 떨어지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친구를 남자답게 힘차게 안아주었다. 마중은 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미란과 약속이 있었다.

친구의 유학은 3년이 소요되었다. 그 사이 나는 미란과 가정을 이루었고, 우리의 아이는 막 돌을 지나던 참이었다. 친구는 돌아오자마자 나를 찾았다. 음악의 조예가 없는 나조차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친구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있었다. 소년 같기만 했던 친구는 조금 더 자라 어른의 냄새가 풍겼고, 외국에서 살다 온 탓인지 더욱 세련되어 있었다. 외국의 말을 해달라는 나의 말에, 알 수 없는 꼬랑 말을 하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오랜만에 웃을 수 있었다. 친구는 그대로였다.

친구가 돌아온 지 몇 개월 후, 어느 날엔가 사냥을 하러 친구와 단 둘이 외진 들판으로 나갔다. 친구는 애초에 사냥에 관심이 없었다. 아니, 친구는 사냥을 혐오했다. 그런데 친구는 사냥을 나가자고 했다. 나는 외국에 갔다 온 친구가 사냥에도 취미를 붙였으려니 생각하고, 채비를 하여 나갔다. 역시나 친구는 사냥에는 관심이 없었다. 날아가는 새를 쏘면 멀찌감치 서서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나중에는 심지어 사냥을 하고 있는 나에게 사냥을 하지 말자고 얘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는,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았다.

바람이 보채고 있었다. 갈대숲에 이리저리 바람이 휘날려, 결국 친구의 모자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주우려 뛰어가려는 내 팔을 친구가 저지했다. 나는 한 번에 친구의 분위기가 바뀐 것을 눈치 챘다. 친구는 이유 없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꼭 무언가에 쫓기는 것처럼.

나는 친구가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사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이니, 어떤 일이든지 말하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친구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한참을 다그쳐도, 친구는 어떤 두려움에 떨며 입술을 잘게 떨기만 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망설이던 친구는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릴 무렵쯤에, 그 무겁게 닫혔던 입술을 결국 열었다. 그 때 친구가 한 말은, 내가 그 친구와 함께 한 모든 시간 중에 가장 이질적인 것이었다.

[여기를 떠나요 형]

친구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단박에 친구의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바깥 세상의 공기를 들이켜 본 친구가 의도하는 바가 뻔히 읽혔다. 친구의 말은 이 들판을 떠나거나, 이 도시를 떠나자는 정도의 말이 아녔다. 그것을 알았기에, 나는 이질감을 뛰어넘어 친구의 말에 분노감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나는 결혼을 한 상태였고, 이제 막 돌을 지나 걸음마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런 나에게 떠나자고 하는 친구의 말은 나에게 모욕의 말과 욕설을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국을 떠나는 자에게는 목숨이 오십 개라는 말이 이곳에는 우스개처럼 떠돌았다. 탈국을 한 자의 목숨 뿐 아니라, 그 일가, 친척, 그의 친구, 동무, 그 와 관계고리가 있었던 그 모든 주변 사람들까지. 모두 처치해버린 다는 소문이 때문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화를 내었다. 아내에게 화를 내 본적은 있어도, 그에게 화를 낸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심약한 그가, 한 번에 말귀를 알아들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친구는 나의 화에 전혀 당황도 않고, 오히려 예상했다는 것처럼 나에게 매달려 왔다. 뿌리치면 매달리고, 떨쳐내면 붙어오며 친구는 나에게 애원 해왔다.

[형이 바깥세상을 보지 못해 그래요, 이곳 같은 지옥과는 다른 세계가 저 밖에 있어요!!!]

난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세뇌된 것만 같았다. 저 바깥의 번지르한 사상에 세뇌되어 온 친구가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나에게 이것을 떠나자고 하는 친구의 의중이었다. 이곳을 떠난 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가, 왜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떠나자는 말을 하는 건지. 아내와 딸, 그리고 지켜야할 것들이 있는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건지. 나의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갈만큼의 절박함이 나에게는 없었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 그 모든 것을 버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친구와 함께 갈 그 어떤 이유도, 근거도. 없었다.

나는 어느 샌가 눈물을 흩날리며 매달리는 친구를 떨쳐 내었다. 그리고 갈대밭 사이 쓰러진 친구를 버려두고 돌아왔다. 친구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친구의 철모를 객기에 가장 친한 친구를 잃어버린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몇 주가 지나도, 심지어 몇 달이 지나도 친구는 연락이 없었다. 섭섭함과, 또 왠지 모를 미안함이 지속적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래도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다. 여전히 나는 식생활의 염려 없이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딸은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그 밤을 잊지 못한다.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내 모든 인권을 상실하게 된 그 밤을.

그들은 밤을 노려 침입해 왔다. 그들 생각으로는 우리가 야밤에 도주라도 할 것이라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아내와 나는 속옷 차림으로 자다가 그들에게 발각되었고 포박되었다. 쳐들어온 병사의 수는 스물도 더 되었다. 본능적으로 나는 보통 일이 일어난 게 아님을 인식했다. 눈앞으로 새하얗게 부시는 빛이 비춰졌다. 그들이 내 신원을 확인하고 있었다.

[대체 이 밤중에 무슨 일이오! 나는 제1연구원 소속 김영운이오!!!!]

나는 오해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잘못 침입을 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 신분을 밝히며 대체 나같이 높은 신분의 사람에게 이 무슨 예우 없는 짓인지를 질타했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내 신분을 밝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들이 찾는 자는 내가 맞았기 때문이었다. 내 얼굴을 확인한 데 이어, 자기 입으로 신분과 이름까지 밝히자 그들은 확신을 얻은 듯, 망설임 없이 나를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빽빽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내는 속옷 바람으로 옆에서 그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눈에서 불이 치솟았다. 피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사력을 다해 저항을 했다. 두 세명의 장정을 매단 채 창문으로 돌진했다. 창문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이 온 몸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었지만, 아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나는 돌진하고, 뒹굴고, 함께 추락했다. 하지만 두 놈을 떼어내면 세 놈이 달라붙었고, 세 놈을 떼어내면 네 놈이 달라붙었다. 절대로 놈들에게 끌려가면 안 된다는 공포감에 사력을 다했지만, 놈들의 숫자는 너무 많았다. 계속 반항하며 저항을 하자, 결국 두 놈이 뒤에서 내 양팔을 하나씩 붙잡으며 포박했다. 온 몸을 뒤틀며 발버둥 치는 찰나, 앞쪽에서 쉬익 하고 뭔가가 날라와 내 복부를 걷어 찼다. 헛기침이 나왔다. 내장이 쏟아질 것만 같은 고통에 나는 거의 까무라쳤다. 몸이 고꾸라졌고 나는 두 놈의 양 어깨에 걸쳐 끌려 나갔다. 마지막 정신을 놓으려는 순간, 어른한 눈자위로 속옷 바람으로 놈들에게 능욕 당하는 아내의 모습이 비췄다.

안 돼!!!!!!!!

나의 모든 사력을 다해 소리를 쳤다. 하지만 내 아내를 지키고자 했던 그 마지막 한 마디는 음성화 되어 나가지 못한 채 내 입안에서 사그라 들었다. 내 아내에게 닿을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말. 내 아내를 볼 수 있었던 그 마지막 날. 그 날 이후로, 난 다시는 아내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구금되었다. 변기보다도 못한 감옥에, 바퀴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구금되었다. 감옥은 내 몸을 차마 다 필 수 없을 정도로 좁았으며, 계절을 막론하고 한 겨울의 들판 같았다. 보통은 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벽이, 거기서는 다른 의미로 존재했다. 사방의 벽에서는 한기가 사시사철 흘러 나왔고, 습한 벽에서 풍겨져 나오는 고약한 냄새에 둘러 싸여 나는 나날이 야위어갔다. 내 몸을 둘러싸고 있던 살이, 그렇게도 단적으로 나의 풍족했던 삶을 증명해주는 그 무언가였다는 걸 그 때 처음 깨달았다. 쥐와 함께 음식-음식이라고도 할 수 없을 묽은 풀죽-을 먹고, 각종 생전 처음 보는 벌레들과 함께 몸을 뉘었다. 가끔은 허기가 져, 그것들을 통째로 씹어 먹기도 했다.

이유도 없이,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서 나는 썩어갔다. 정말로 살이 썩어가고 곪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사람이 미치는가를 감옥에서 배웠다. 썩어가는 살과 곪아가는 상처들, 야위어 가는 몸은 오히려 나의 정신을 선명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나를 미치게 하는 것은, 몸 하나 조차 제대로 누일 수 없는 독방에 홀로 갇혀,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로, 왜 이곳에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누구 하나와도 그에 대해 물어볼 수 없는 채로 내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 곳에 왜 있는가를 생각할 때면 나는 미쳐가는 것 같았다.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으면 나는 손등의 살을 깨어 물거나 살점을 떼어내면서까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내 생애 최악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낸 지 몇 주가 됐는지, 몇 개월이 됐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던 그 어느 날, 나는 간수로부터 그 모든 것의 이유를 들었다. 모든 것을 뺏기고, 삶의 권리조차 잃어버린 채 이렇게 된 이유를.

[더러운 피를 이어받은 개만도 못한 새끼!]

처음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알 수 없는 얘기를 했다. 조국의 배신자, 갈아서 죽여버려도 석연찮을 반란자 새끼. 그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뿜어져 나왔다. 영문을 모른 채 그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무슨 연유로 내가 잡혀온 건지 그것만 알려 달라 애원했다. 매달리는 나를 더럽다는 듯이 쳐다본 그는 혀를 끌끌 차며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가족 팔아먹고 도망 친 그 새끼가 남쪽에서 잡힐 날이 머지않았어.]

그제야 난 모든 것의 정황을 알았다. 그가 내내 새끼라고 지껄였던 게 단순한 욕이 아님을 알았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가 우릴 버리고 탈국을 한것이었다!!! 난 입안의 살점을 피범벅이 될 때까지 물어뜯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저주했다. 경멸했다. 그리고 혐오했다. 나를, 우리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버지였다니!!! 손톱이 다 꺾이고, 부러지고 뽑혀질 때까지 벽을 긁으며 나는 아비의 이름을 저주했다.

잡혀서 뒈져버려라!!!

배가 터져 죽어버려라!!!

이미 그 보다 더한 모진 고문과, 변소만도 못한 곳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아비를 욕보였다. 남쪽. 그가 우리와 맞바꾼 그 저주의 땅 또한, 저주를 했다. 그런 사상에 물들어 조국을 버리고 도망 친 나의 부끄러운 아비. 그리고 내 아비를 홀린 창녀 같은 그 남쪽.

나는 죽지 못해 산 게 아녔다. 그들을 저주하기 위해 살았다. 날마다 허약해져 가며 몸무게가 50킬로까지 줄었던 내가 살 수 있게 만든 것은 그 어떤 희망도 아닌, 그들을 향한 저주였다. 그렇게 나는 그 감옥 안에서 2년간을 버텼다. 그 2년 동안 내가 만났던 사람은, 단 세 명이었다. 간수 하나. 그리고 고문 담당관 2명. 그 세 명이 내가 만날 수 있던 전부였다.

악에 바쳐 살던 것도 지겨워지던 그 어느 날, 그들이 나를 불러내었다. 나는 약 몇 개월 간 뜸했던 고문이 다시 시작되는 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평소와는 다른 길로 가고 있었다. 고문장이 아니라면, 사형장밖에 없다. 당시 나에게 주어진 것은 그게 다였다. 고문, 아니면 사형.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내 아이도, 그 누구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이 시점에 살아서 뭣하겠는가. 아비에게 저주를 퍼부은 나 같은 짐승에게, 가족과 직위, 직장, 행복하던 시절 모든 것을 통째로 잃어버린 아무 것도 없는 나 같은 자에게 살아갈 이유란 건 없었다. 사는 게 버거웠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나는 마음을 정하게 하고 간수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미련이 없다는 마음과는 달리 다리는 후들거렸다. 이 와중에, 이런 똥물마도 못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신호인 것인가. 나는 자괴감이 들었다. 하루 빨리 죽을 수 있다면. 이 개만도 못한 생활과 벌레만도 못한 몸뚱아리를 청산할 수 있다면!!

간수는 한참을 걸어갔다. 점점 복도가 새하얘지고 있었다. 5분쯤 걸었을까. 나는 어느 문 앞에 도달했다. 깨끗한 하얀 문 앞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었다. 삶에 미련을 가지는 이 몸뚱이에 환멸을 느끼며.

그리고 나타난 그 방에서, 나는 총을 든 병사가 아닌, 친구를 발견했다.

탁.

나는 주저앉았다. 내 다리는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후들거렸다. 나는 오한에 걸린 것처럼 전신을 떨어댔다. 자동반사적인, 신체적인 반응이었다. 못난 몸뚱이 같으니라고! 내 몸뚱이는, 그를 나를 살려줄 어떤 동아줄이나 희망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몸뚱이를 그에게 내보이며 비참함과 희망의 양날 가운데 서 있었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구더기보다도 구질구질할 내 몰골을 차에게 그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끔한 바닥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기만을 몇 분. 어느 샌가 바닥을 짚은 내 더러운 손을 따뜻한 그 무언가가 쥐고 있었다. 그의 손이었다. 그 순간 그의 손이 그 어떤 것보다도 부드럽게 느껴졌다. 마치 어릴 적 만졌던 어미의 유방보다도 더 부드럽게. 솜사탕처럼 말이다. 그의 손이 나의 마른 뼈마디를 만졌다. 터버린 내 손등과, 겹쳐 잡은 그의 손등 위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후두둑.

눈물이 쏟아졌다.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가 그렇게 울었다.

 

그가 나를 방문한 이후로부터 나는 좀 더 나은 방으로 옮겨졌다. 먹을 것 또한 더 나아졌다. 밀가루 반죽을 구운 것과 곤죽, 그리고 간혹 그 곤죽에 고기 뼈가 몇 개 얹어진 것이 들어왔다. 방은 예전처럼 사시사철 춥지 않았고, 마침 봄이 되어 햇살이 따뜻하게 방 안을 쬐어오기도 했다. 나는 다시 예전 같은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이런 변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나는 그저 권력이 있는 집안의 아들인 그가, 부친이나 아니면 다른 어떤 권력을 이용해서 나를 조금 더 좋은 방으로 넣어 줬을 거라고만,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가 설마 나와 함께 도망칠 계획을 하고 체력을 기르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을 줄은 나는 꿈에도 몰랐다.

그는 꾸준히 면회를 왔다. 주기는 달랐지만, 간혹은 2주에 한번씩, 늦어질 때는 2달에 한 번씩이라도 그는 꼭 나를 보러 왔다. 나는 그의 우정에 감탄했다. 1급 탈국범의 아들을 이렇게 좋은 방으로 넣어주고, 면회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걸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권력이든지 다 이용하고 있으며, 자기가 가진 모든 돈과 모든 지위를 이용해서 나를 살찌우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우정을 떠나, 거의 형제 같은 우리였기에 나는 그의 정성과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친척도 다 등을 돌리고 보살 펴줄 부모도, 보호해줄 가족도 잃어버린 나에게 유일했던 그를 나는, 정말 동아줄로 삼았다.

나는 그 감옥에서 총 3년을 있었다. 그는 그 사이 남모르게 뒤에서 나를 빼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주 은밀하고, 아주 위험한 방법으로. 그랬기에 나조차도, 그가 나를 빼내려는 그 순간까지 그가 나를 빼낼 거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어느 날처럼 나를 면회 온 그가, 내가 한 번도 오다닐 수 없었던 그 문을 열었을 때까지도.

면회인이 들어오고는 했던 그 문에는, 항상 간수들이 보초를 선 상태였다.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전하던 그의 손이 점점 떨리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뜬금없이 그 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나는 어리둥절했고 대체 그가 무슨 짓을 아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문을 열자, 놀랍게도 그 곳에는 간수들이 없었다. 무슨 영문인지 파악도 하기 전에, 그가 나에게 말을 했다.

[여길 떠나요 형]

아. 나는 전에도 그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를 밀치고 뿌리치고, 갈대숲에 버려두고 왔던 그 날, 그가 나에게 했던 말. 그는 두 번째로 그 말을 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서둘러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두 번째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하지만 이번 것은 전과 달랐다. 더 이상 고민해서 무엇 하랴! 죽음과 고문밖에 남지 않은 나에게. 여기서 죽거나, 여기서 벗어나다 죽거나! 그 무엇도 나에겐 두렵지 않았다. 나는 나를 이끄는 그의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그는 그 손길에 그 와중에도 뭉클해하는 기색이었다.

이상했다. 그가 가는 곳 마다, 있어야 할 간수가 없었다. 매수를 한 건지, 아니면 다 죽이기라도 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조심조심 차례차례 그 끔찍한, 영영 살아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옥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개구멍 아래로 내 머리부터 밀어 넣었을 때. 고개를 내밀은 나는, 그렇게도 맡고 싶었던 '살아가는 것들'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렇게도 거대하고도 난공불락 같던 그 철벽이, 개구멍 하나에 무너지다니. 허탈했다. 하지만 우선, 나는 '살아가는 것들'에 속할 수 있게 되었다.

감격에 젖기도 전에, 그와 나는 다시 어느 차로 올라타졌다. 우리는 한 시가 급했다. 얼마 안 있으면 그가 나를 데리고 탈주했다는 공문이 모든 경계선 마다 내려지게 될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있던 감옥이 국경선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타고, 국경선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뒤쪽에 있는 배낭을 메고 있을 것을 요구했다. 배낭 안에는 우리가 국경을 넘고 나서 입어야 할 옷들과 씻을 수 있는 비누, 여러 서류들과, 미국 달라 돈뭉치들이 들어있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하게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그가 준비한 모든 것들과,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우리의 탈주로 인해 알 수 있었다.

그는 아주 운전을 잘 했다. 처음 보는 도로로 그는 막힘없이 돌진했다. 마치 수 십 번을 다녔던 길처럼,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차에 올라탄 후 몇 분이 안 되어 그는 우리가 세 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할 것이라 얘기를 했다. 어느 새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불을 킬 수 없기 때문에 저녁에는 운전을 하지 못할 것이라며 걱정을 했다. 세 시간 반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가 초조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슬며시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받은 내가 줄 것은, 이런 것밖에 없었다. 나의 접촉에 그는 나를 향해 아주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한 십여 분쯤 더 갔을까, 그의 안색이 좋아지고 있었다. 저기 저 동상을 보라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저 동상을 지나 5분만 더 가면, 강으로 향하는 초소가 나오게 된다고 했다. 그의 지시에 나는 다시 가방을 고쳐 맸다. 가방을 맨 것을 확인하더니, 그가 주머니 속에서 시계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오른쪽 손목에 착용하라고 했다. 나는 어설프게 왼손으로 그걸 착용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그가 급정거를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급정거는 아녔다. 급정거는 급정거 시 마찰음이 나므로, 그는 최대한 속력을 줄여 차를 세웠다. 착용하던 손목 시계가 떨어졌다. 나는 그걸 주워들어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게 무슨 까닭인지 묻자, 경계초서가 훨씬 내려와 있다는 말을 했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강가까지 가야한다는 얘기에, 우리는 지체 없이 차를 풀숲으로 버리고, 도보로 강을 향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삼십분만 걸어가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착하면 세 시간 정도 숨어 있은 후에, 달이 조금 기울었을 두시 경 강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그가 수학에 능한 자인지 나는 미처 몰랐다. 그의 말을 따라 약 이십분쯤 걸어갔을 때쯤이었다. 등 뒤 편 저 멀리에서 소란이 들려왔다. 우리는 나란히 뒤를 돌아보았다. 어지러운 불빛이 우왕좌왕 여기저기로 비추고 있었다. 우리를 찾고 있는 불빛이었다. 스무 개도 훨씬 더 되는 불빛들이었다. 우리는 손을 붙잡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어서 강가에 도착해서, 안전한 곳에서 포복하고 있다가 적당한 때를 봐 강물을 건너야 했다.

그는 자꾸 뒤쳐지곤 했다. 마음이 급했지만 그의 보폭에 맞추어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편 너머에서 반짝거리는 것이 나타났다. 달빛에 펼쳐진, 흐르지 않는 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 것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우리의 생사를 판결해 줄, 우리의 목숨을 손에 쥔 강물이었다. 강물을 보자마자 속으로 그 강물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제발, 우리를 뱉어내지 않기를. 제발 우리가 무사히 저 강을 건널 때까지 우리를 보호해주기를.

강기슭에 도착한 후 우리는 풀숲 사이에 몸을 숨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평정을 유지하는 것 같아 보이던 그는 그제서야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에도 그는 깜짝깜짝 놀랬고, 1초가 지날 때마다 억만년을 겪는 듯 했다. 1시간은 그에게도, 나에게도 너무 길었다. 그에 못지않게 나 또한 최고의 긴장 상태였다. 주머니 속의 시계를 꺼내 달빛에 살짝 비추어보았다. 1초가 정말로 억만년이었다. 목이 타고, 마음이 썩어 들어가며, 몸뚱이는 땅바닥으로 흘러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 억만년의 긴장과 지루함을 우리 둘은 함께 버티어냈다.

친구를 보았다. 그렁그렁한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 흐르는 눈물을 훔쳐주고 그의 양뺨을 부둥켜 쥐었다. 우리가 함께 하는 결심이었다.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고쳐 쥐었다. 우리 둘은 나란히, 소리 없는 구령을 외쳤다.

하나. 둘. 그리고, 셋!!!!!!!!!!!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삶을 향하여 함께 돌진했다.

 

기슭에는 풀벌레나 작은 새들의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귀속에서 지잉 하고 울리는 이명이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 같았다. 아니. 아니다, 우리가 내뿜는 하얗게 서린 입김이 거칠은 우리의 호흡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는 호흡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나 또한 그의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우리의 뒤로, 강이 펼쳐져 있었다. 하얗게 달빛을 반사해 내는 얼어버린 죽음의 강. 그것이 우리의 뒤쪽으로 펼쳐져 있었다. 온 몸의 세포가 들끓어 오르는 것 같았다. 머릿속이 그 어떤 간질거리는 흥분의 열기로 차올랐다. 죽음의 골짜기만 같던 그 거대한 강을, 우리는 따돌린 것이다!!!!

탈국!

우리는 탈국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을 느끼기도 잠시, 그는 바로 가방 안에서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벌써 저쪽에서 이쪽 경계선 초소로 무전 망으로 연락했을 것이 뻔했다. 빠르면 20분, 늦으면 30분 안에 그들이 이쪽으로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그는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더니, 내 손목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뛰고, 또 뛰고, 또 뛰었다. 우리가 향하는 것은 산 아래 마을이 아니었다. 그가 준비해온 물품들을 보더라도, 나는 우리가 바로 산 아래의 이국 마을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이곳을 떠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마을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더 산 위로. 공기가 희박하고, 점 점 더 수풀이 촘촘해지고 거칠어지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마 이곳 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가 잡힐 확률이 높거나, 아니면 마을 아래쪽에 다른 무언가 있다는 정보를 이미 획득한 듯해 보였다.

나침반도 처음 한번만 보고, 우리는 두서없이 마구 달렸다. 아직 탈국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경계선만 벗어났을 뿐이었지, 탈국의 험난한 여정은 그제서야 시작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안전하게 받아 줄 남쪽이나, 아니면 미국 같은 나라에 도착하기 전까지, 우리는 영원토록 쫓기는 신세일 것이 분명했다.

위로 향할수록 원초적인 숲은 더욱 촘촘하고 더욱 뾰족해지며 우리의 진입을 막고 있었다. 달릴 때마다 온 몸으로 가시덤불이 할퀴고 지나갔고, 발 아래로는 엉겅퀴 같은 것들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들어오지마 이 탈국자들!!! 배신자들!! 숲이 우릴 향해 울부짖고 야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품으로 내달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땀을 한 바가지 쏟아내고 젖었던 옷이, 시린 공기 속에 다시 얼어붙었다. 옷이 무거웠다. 발바닥은 따끔했고, 이제는 소리를 숨겨야겠다는 자각도 없이 목구멍에서는 쉰소리가 헉헉대며 뿜어져 나왔다. 다행히 우리를 쫓아오는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는 없었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온 몸의 뼈가 녹아버리고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을 정도로 우리가 탈진할 때쯤 그는 나에게 시계를 보여 달라 요청했다. 시계 바늘은 5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 덧 4시간 이상을 우리는 달려온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시간이었다. 하지만 깊은 산 속은, 해마저 침입을 용이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있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멈춰 서기로 했다. 그와 나는 몸을 숨길만한 좋은 곳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형!]

저쪽에서 그가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 왔다. 작은 동굴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곳이었다. 온전히 우리 둘 다 몸을 숨길 수 있을만한 딱 그 정도 크기의 동굴에 우리는 함께 들어가 앉았다. 그리고 동이 터올 때까지 각자 무릎을 끌어안고, 그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우리는 지쳐 있었고, 탈진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들의 총에 발각 되어 총살 당하기 전에, 기력이 쇠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않고, 우리는 동이 터올 때까지 그렇게 무릎을 끌어안고 자신과 싸우고 있었다.

 

지저귀는 새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었다. 어느 샌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한낮인지 하얗게 빛샌 해가 동굴 안까지 비추고 있었다. 나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기척을 살피다 밖으로 나갔다. 온 세상이 하얬다. 나무도, 풀도, 흙도, 햇빛마저도! 눈이 잔뜩 쏟아져 내려 있었다. 분명 어제도 쏟아져 있었을 터인데 어제는 눈이 왔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새하얗게 새어버린 채 정지해버린 그 곳에서 움직이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나는 주변의 발자국부터 찾아보았다. 혹시라도 발견되면, 하는 생각에서 찾아보았는데 다행히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밖에 없었다.

목이 탔다. 어제부터 우리는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주변을 살피며 조롱물이나 떨어져 녹아내리는 얼음을 찾았지만, 찾아지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두 손바닥을 모아 눈을 퍼내었다. 시려운 눈에 손의 핏줄까지도 악을 써댔지만, 나는 한참을 버티고 서서 눈이 내 체온에 녹아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 살아있는 생물체였던 모양이다. 눈이 서서히 녹아 몇 모금의 물을 만들어 냈다. 나는 그 물이 흐르지 않게 조심하며 다시 동굴로 돌아갔다.

친구는 아직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고단히 잠들어 있었다. 가지런히 모은 두 발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발은 작았다. 한 손에 들어올 작은 발이, 온갖 가시와 엉겅퀴, 돌부리에 걸쳐 피딱지와 상처 투성이었다. 우리 모두 함께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그 발을 보자 나는 마음이 아팠다. 한 번도 친구의 발은 그런 적이 없었다.

나는 친구를 살짝 흔들어 깨웠다. 친구가 가느다랗게 눈을 떴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잘 때 눈물을 흘리며 잔 모양인지 습한 눈곱이 눈 주위로 끼어있었다. 친구는 나를 발견하더니 또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마음이 울컥거렸다. 나는 부르튼 친구의 입술로 내 손바닥을 들이 밀었다. 처음 그는 놀라더니, 그걸 사양했다. 몇 번이고, 내 입술로 내 손바닥을 밀어냈다. 내가 먼저 먹어야 한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그의 입술로 손바닥을 들이밀었고, 그가 더 이상 밀어내지 못하도록 힘을 잔뜩 주었다. 그리고 손날 부분으로 그의 입술을 툭툭 쳤다. 그는 난감한 듯이 웃더니, 어쩔 수 없는 듯 내 두 손바닥 아래쪽을 받치듯이 두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내 손 안에서 이미 미지근해진 물을 쪼로록 빨아 들였다. 그의 입술을 축인 후, 나는 여러 번 그렇게 녹인 눈을 가져와 그의 입술에 들이 밀었다. 쉽사리 마시려하지 않는 그와 몇 번의 실갱이 끝에 그의 갈증을 녹여주고, 나 또한 물을 마실 수 있었다. 그때 내 손은 이미 시뻘개져 있었다. 나중엔 그냥 눈을 퍼먹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눈 아래를 파보고, 나무를 흔들어보기도 하면서 뭔가 먹을 것을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흔한 나무 열매조차도 우리는 찾을 수 없었고, 나무줄기와 뿌리는 너무 딱딱하게 얼어 씹어 먹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배낭 안에 들어있던 작은 비스켓을 꺼내어 우리는 나눠 먹었다. 비스켓은 총 열 조각이 있었다. 우리는 그 중 한 조각을 꺼내어 반으로 뚝 잘랐다. 그에게 반조각을 주고, 나는 나머지 반 조각을 먹었다. 손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가루가 너무 아까워서 혓바닥으로 손바닥을 훔쳤다. 비스켓 반 조각은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먹고 나니 더 큰 허기가 몰려왔다. 그래도 감옥에서 풀죽만 먹고, 그마저도 못 먹고 살던 때를 떠올리니 비스켓도 굉장히 충분한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미 비스켓의 짭쪼롬하고 달큰한 맛이 사라진 손바닥을 계속 핥고 있는 나에게, 그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의 몫의 비스켓이었다. 한 귀퉁이 쥐꼬리만큼 베어 물고, 나에게 그가 다시 그걸 내민 것이었다. 화를 내고 싶었으나 화를 낼 기력조차 없었다. 자꾸 나에게 비스켓을 내미는 그의 손을 다시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어떻게든 먹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형이 나보다 크잖아요 더 먹어야돼요]라고 얘기했다. 내가 그보다 큰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 쥐꼬리만 한 비스켓을 뺏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양을 하고, 됐다고 하는데도 자꾸 포기하지 않고 그는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그의 손을 탁 하고 쳐버렸는데, 비스켓이 동굴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더 짜증이 났다. 습한 동굴 바닥에 눅눅해지며 형체를 잃어버리는 우리의 식량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나는 동굴 바닥에 부숴진 비스켓을 어떻게든 긁어모은 다음에 그의 아구를 쥐어 들었다. 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떠졌다. 한 손에 그의 아귀를 쥔 채 힘을 주어 비틀어올리자 그의 입이 저절로 오물리지 못하고 열렸다.

[으윽]

그의 목구멍에서 소리가 토해졌다. 그 입안에 나는 다른 손에서 부서져버린 비스켓 조각들과 가루들을 집어넣었다. 억지로 비스켓을 삼켜버리고 난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분한 듯이. 자기 목숨을 생존하라고 넣어 준 음식물에 왜 그가 화가 났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의 목숨이 내 목숨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아낌없이 그의 입안에 수유를 했다.

그 날 밤 동굴 안에서 다시 한 밤을 새고, 다음 날 일어날 때까지도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단단히 삐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시 이동을 했고, 그 이동 경로를 설명해주기 위해 그는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말과 계획에 의하면, 우리는 산자락을 타고 다른 지방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보통의 탈국자들은 국경선을 넘은 뒤 바로 마을로 내려가 은신처를 찾는다고 했다. 몇몇은 성공을 하지만, 발각되어 잡혀가는 수도 만만치 않다. 탈국자들은 보통 이 곳의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말을 시키는 순간 정체가 탈로 나기 마련이었고, 무엇보다도 탈국자들의 말라비틀어지고 시꺼먼 귀신같은 모습 때문에 겉모습만으로도 탈국자임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그나마 고위층의 자녀여서 피부도 하얀 편이고, 덩치도 있는 편이었고, 그래서 마을 아래로 내려갔을 때 살아남을 확률이 좀 더 높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는 가장 안전한 길을 택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약 60킬로미터. 이 산 중에서 우리가 더 헤매야 할 거리는 60킬로미터였다. 그렇게 산자락을 타고 내려가면 좀 더 남쪽의, 우리를 찾는 이들이 드물 그곳에 도착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낮 중에는 걷고, 밤에는 동굴이나 바위틈에서 잠을 청했다. 사실 잠을 잘 청할 수는 없었다. 영하 20도의 추위에 누더기 같은 옷 한 장 걸친 채 잠을 청한다고 생각해 보라. 지금 나에게 똑 같은 상황이 놓여진다면, 나는 오히려 그 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어떻게 해서는 살아남겠다는, 그 처절하고도 악착같은 삶에 대한 의지가 우리를 살아남게 하고, 우리의 다리를 움직이게 하고, 우리로 혹독한 추위를 견디게 하는 가장 큰 방패막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삼일을 내내 걸었다. 산 속에서는 간혹 산토끼들이 발견 되었다. 처음엔 녀석들을 쫓아 다니느라 온 힘을 다 뺐는데, 삼일 째 드디어 그와 내가 합동으로 한 놈을 잡았다. 토끼의 두 귀를 잡은 채 이 놈을 어떻게 벗겨먹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가방 속에서 칼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사냥과 살상을 그렇게도 싫어했던 그도 굶주림과 삶의 끝에서는 살상을 부추기고 있었다. 나는 조금의 씁쓸함을 느끼며 그가 보이지 않을 바위 뒤에서 토끼의 목을 땄다. 하얀 설 밭에 토끼의 빨간 피가 흩뿌려졌다. 가죽을 벗긴 후 우리는 처음으로 불을 피웠다. 영하 20도의 추위와 싸우며 잘 때도, 혹시라도 발각될까 피우지 않았던 불이었지만, 우선 날이 밝았고 음식을 갈구하는 허기진 배가 빨리 토끼의 살을 데워 삼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장작불에 우리는 토끼를 구워 먹었다. 그의 살 뿐 아니라 못 먹을 온갖 위장까지도. 오랜만에 우리는 배부름을 느낄 수 있었다. 토끼의 한 몸 희생이 우리의 뼈와 살이, 그리고 우리가 탈국을 할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었다.

나는 남은 가죽으로는 뭘 할까 생각하다, 동그랗게 가죽을 둘러 가느다란 나무줄기로 엮은 귀마개를 만들었다. 내내 친구의 귀가 새빨갛게 얼어있던 것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얼음을 녹여 물로 만들고 있던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양 귀에 귀마개를 덮어주고 나무줄기로 귀마개를 고정시켜주었다. 그는 처음에는 무슨 일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토끼 가죽으로 귀마개를 만들었다는 나의 말에 눈에 띄게 기뻐했다.

[형이 하지 왜요… 난 이런 거 필요 없어요]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누구보다 귀마개에 기뻐하고 있음을 온 몸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귀여운 거짓말에 머리통을 퉁 쳐주고 한 마디 덧붙였다.

[토끼 귀마개하고 있으니까 토끼 같다]

내 말에 친구는 머리끝까지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뒤를 돌아 가버렸다. 눈밭을 헤치고 총총총 걸어가는 모습이 정말 토끼 같아 나는 그 뒷모습을 보고 한동안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콜록]

그가 뒤에서 기침을 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기침에 그를 돌아보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미 그는 너무 많이 기침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감기에 걸린 건지, 폐렴이 걸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런 환경에서는 조그만 감기조차 죽음과 바로 연결될 수 있다는 초조함이 나를 불안에 떨게 했다. 남쪽을 향해 국경선으로부터 걸어온 지 7일째. 나침반을 봐도 우리가 남쪽을 향하는 건 분명했는데, 너무 산 위까지 올라와서일까. 날선 바람은 더욱 매서워지고 있었고, 심지어 눈발이 휘몰아치며 폭풍우의 기미까지 보이고 있었다.

친구가 기침을 할 때마다 나는 수명이 하나씩 줄어가는 것 같았다. 저렇게 기침을 하다가 어느 순간 그가 눈밭에 각혈을 하는 장면이 눈앞을 자꾸 스치고 지나갔고,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은 절대 들어 올려지지 않을 무거운 추를 매단 것처럼 자꾸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눈발이 점점 더 거세어지고 있었다. 두 뺨을 매섭게 때려오는 눈발에 나조차도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이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하더라도, 이러다가는 둘 다 산속에서 동사되어 시체로 발견될 게 뻔했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발걸음을 멈췄다.

[오늘은 이쯤에서 그만하자!!]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소리를 지르지 않고서는 음성이 전달되지 않았다. 이미 아랫입술이 새파랗게 질린 그는 기력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계획했던 거리만큼 꼼꼼히 체크하여 나갔던 그가, 이렇게 중도에 쉬고 싶어 하는 걸 보니, 그의 몸 상태가 예삿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를 굵은 나무줄기 뒤에 세워두고 여기저기로 뛰어 다녔다. 그와 내가 하룻밤 묵을 만한 좋은 피난처가 필요했다. 눈보라에 시야가 가려져 예전처럼 좋은 장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발바닥에 감각이 없었다. 동상에 걸리는 듯 했다.

30분도 넘게 뛰어다니며, 결국 그 영하의 추위에 진땀을 흘렸을 때야 나는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나무줄기로 이리저리 입구가 뒤엉켜, 안쪽에 굴이 있는지도 몰랐던 동굴이 발견된 것이다. 나는 내내 떨며 나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친구에게 달려갔다. 항상 혈색이 돌았던 입술이 파랗게 변해 덜덜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니 애가 타는 걸 떠나 분통이 터질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이 겨울에는 입고 다닐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하는 그런 옷차림으로 우리는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눈밭을 헤매고 다니고 있었다. 그의 귀와 머리통만을 살짝 가려주고 보온해 줄 토끼털을 보자, 나는 당장에라도 토끼를 스무 마리든 백마리던 잡아 가죽을 벗겨버리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안되겠다 싶어 그를 등에 업어 매었다. 평소 같았으면 거칠게 반항했을 그가, 나에게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내 옷자락을 꾹 잡아 뜯었다. 나는 이유 없는 분노에 휩싸이고 있었다. 아니 모든 것을 향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산자락도, 영하 20도를 웃돌지 않는 거지같은 날씨도, 우리의 귓방망이를 때려오는 칼날 같은 눈보라도, 우리를 이 산속에 유기한 우리의 운명도, 우리만을 비껴가는 신의 자비도!!!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를 내려놓았다. 그는 내려놓자마자 동그랗게 몸을 말고 새우처럼 웅크린 채 달달달 몸을 떨어댔다. 나는 그를 둔 채 다시 밖으로 나갔다. 동굴 입구를 막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커다란 바위 같은 것 말이다. 나는 곳곳에서 바위를 주워오기 시작했다. 틈틈이 불 피울 수 있는 나뭇가지들도. 여지껏 위치가 노출될까 번번이 불 피우는 것을 지양해왔지만, 이 판국에 그들에게 발각되든 안 되든 우선은 그의 몸을 녹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여기저기서 작고 큰 돌덩이들을 주워오는 동안 다시 내 등에는 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천만 다행으로 굴의 입구는 크지 않았고, 많은 돌덩이들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는 먼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서서히 입구를 돌덩이와 바위로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바깥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차단하기 위해.

완벽하게 입구가 밀봉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바위를 쌓아올리자 찬 눈보라와 바람이 굴속까지 몰아치지는 않았다. 나는 서둘러 나뭇가지에 불을 붙였다. 젖은 나뭇가지들에는 불이 쉽사리 붙지 않았다. 의미 없이 수명을 다한 성냥개비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목숨만큼이나 소중했던 성냥개비였지만, 그 때만큼은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 같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나뭇가지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따뜻한 화염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한 구석에 몸을 말아 뉘고 있던 그를 끌어 당겨 왔다. 그 때만큼 친구가 작아 보이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아픔에 나의 목이 메어왔다. 나는 불을 앞에 둔 채 그를 끌어 왔고, 별 저항 없이 힘이 빠진 몸뚱아리를 사지로 꽁꽁 묶어 냈다. 순간 그의 몸이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땀으로 축축한 내 몸의 습기에 놀랐기도 놀랐거니와, 사내끼리 끌어안은 것에 놀랐으려니 생각하고 나는 그의 몸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우리 지금은 서로를 여자라고 생각하자]

탈국 과정 중에 계속 연약해진 그의 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작았다. 품 안이 헐렁해질 정도로 작아진 그의 몸에 나는 두 팔을 더욱 꽁꽁 감싸 매어 그를 붙들어 안아 올렸다. 그리고 친구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한 군데도, 내 몸에서 나는 열이 허투로 공중으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내 몸에서 나는 모든 온기가 그에게 전달되기 위해, 나는 빠짐없이 모든 신체 한 군데 한 군데를 그와 맞추었다. 나의 몸 안에서, 그리고 불꽃이 주는 열기 속에서 그의 몸의 심한 떨림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어르듯이 그의 등허리를 두 손바닥으로 끊임없이 쓸어 내렸다. 나의 마찰이 또한 그에게 온기로 전환되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몸에 기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떨림이 잦아 들어가던 그의 몸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몸이 다시 한기를 느끼는 듯해서 등허리를 쓰다듬던 손놀림을 빠르게 했다. 하지만 그의 떨림은 잦아들지 않았고, 심지어 품 안에서 뒤척이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에는 그가 불편함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 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녔다. 그는 내 가슴팍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그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가 더 이상 제 정신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고 그를 더 가슴팍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그의 머리통을 끌어당겨 역시 가슴팍으로 함께 안았다.

하지만 그의 저항은 점점 더 거칠어져 갔고, 그는 두 손바닥을 내 가슴팍에 댄 채 나에게서 떨어져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서 떨어져 나오려는 그의 행동에 오기가 생겼다. 우리 둘은 실랑이를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거야!!]

[시…싫어!!]

심지어 그는 눈을 질끔 감은 채 싫다는 말을 꺼냈다. 나는 대체 무엇이 싫다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이유 없는 그의 발언에 더욱 흥분했다. 나에게서 벗어나려는 그와, 품으로 안으려는 내가 서로 뒤엉키기 시작했고 어느 샌가 불 장작으로 인해 어느 정도 데워진 동굴 안에는 우리 둘이 뿜어내는 김이 쉭쉭 서려졌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그에게 결코 거칠게 대하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자꾸 아픈 몸으로 반항을 하는 그에게 나는 소위 말해 꼭지가 돌았고, 그의 두 손목을 잡고 힘이 빠진 몸뚱이를 동굴 바닥으로 쳐 밀어붙였다. 나는 그의 위에 올라타서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는 차마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었고,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그의 동산 같은 뺨 선을 타고 흘러 내렸다. 내 손 안에 붙들린 그의 손목이 내 손아귀에 빠져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뒤틀리고 있었고, 그의 하체는 안절부절 못하고 뒤틀리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는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했고, 그 어떤가를 숨기려고 하고 있었다. 어째서 지금 이 순간에, 그가 이토록 필사적인지에 대한 의문에 대답을 못 찾은 채 그의 저항을 바라보면서 멍해진 그 어느 한 순간.

결국 그가 내게 붙잡힌 손 한쪽을 뒤틀어 빼내었다. 그리고 그 손은 그의 하체로 내려갔다. 그의 손의 궤적을 따라 나 또한 시선을 내리려던 참이었다. 그가 나를 다급하게 불러왔다.

[형!!!]

그의 목소리의 호소력에 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물이 이리저리 엉겨 붙은 얼굴이 겁을 먹은 채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녀석의 파랗게 질렸던 입술은 어느 순간엔가 다시 제 색을 찾아 혈색이 어느 정도 돌아 있었다.

[형!!! 아, 아….]

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도 나는 그의 손이 가린 곳을 향해 시선을 내렸다. 이미 자유로워진 양 손은 필사적으로 한 곳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발기했던 것이었다.

그가 울음을 터뜨렸다. 눈물샘이 터진 것처럼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들어 흘러나오는 눈을 가렸다. 미처 가려지지 못한 그의 입술이 울음을 참느라 깨물리고 짓눌러져 퉁퉁 불은 채 여기저기가 터져 있었다.

나는 어째서 그가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이는 지 알 수 없었다.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자신을 숨길만 한 방패막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함께 알몸으로 벗겨져 탈국을 했으며, 강가를 건너고, 이 깊은 산중에서 며칠 째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설사 신체적인 반응이 와 발기를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서럽게 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본능밖에 남지 않은 우리에게, 알몸밖에 남지 않은 우리에게, 인간으로서 가장 나락까지 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그렇게까지 울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와는 달리 분명 제 정신이었던 나의 안쪽에서도 무언가 불쑥 불쑥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제 정신이 아닌 듯이 울고 있는 그를 보니, 나도 어떤 끈을 놓치게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빛이 점멸했다 다시 환히 비추듯이, 머릿속이 시꺼매졌다가 다시 시야가 돌아왔고, 다시 돌아온 시야에는 눈물 범벅이 된 그의 얼굴과 불어터진 그의 입술이 들어 왔다.

우리는 이미 인간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인간 이하였기에, 인간 같지 않은 욕정과 충동에 사로 잡혔을 지도 모른다. 나는 아내와 사별한 후 관계를 맺지 못한지가 5년이 넘은 상태였었다. 갑자기 저 깊은 곳 어딘가 에서부터 울컥 울컥 무언가 급속한 속도로 쳐 올라왔고, 머릿속을 쾅 치고 다시 내려갔다. 나는 구역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구역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춘 것이다.

혀끝에 짠 맛이 느껴져 왔다. 그의 불은 입술은 여기저기 터져 있었고, 그 중에는 곪은 곳도 있었다. 그의 입술을 쭉쭉 빨 때마다 터진 곳에서 곪은 염증의 맛이 혀끝에 느껴지는 듯 했다. 상한 맛이 입 안에서 쓰게 맴돌았다. 나는 그의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의 입안은 달았다. 아밀라아제의 단 맛이 참 개울을 만난 듯이 내 입을 축여 주었다. 천인공노할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이 울고 있던 그는 내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어오자 오히려 적극적으로 내 혀를 감싸왔다. 나는 서둘러 그의 아랫바지를 내리고 그의 속옷을 벗겨 내었다. 나는 남색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남색이라는 단어만 알아왔지, 그들이 어디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성행위를 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전 지식이 없었다. 하지만 본능은 모든 것을 이기는 듯 했다. 그는 속옷을 벗겨내는 나의 손길에 아무런 저항감 없이 엉덩이를 들어주더니 양 허벅지를 잡고 벌려내었다. 나는 그가 벌려낸 곳의 가운데 있는 그 곳에 들어가야 함을 알았다. 침을 뱉어내 그곳을 문질어 열었다. 그가 신음소리를 냈다. 손가락을 빼고 바로 그의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여기저기가 봉선화처럼 툭툭 터져 나갔다. 우리는 짐승처럼 울고, 짐승처럼 헉헉대고 있었다. 모든 것이 터져나가고 있었다. 우리의 슬픔, 우리의 고통, 우리의 아픔, 우리의 분노, 우리의 쫓김, 우리의 죄책감, 우리의 욕정. 모든 것이 함께 터져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눈보라는 그쳐 있었다. 언제 우리에게 그렇게 매섭게 뺨땨구를 치고 심하게 대했냐는 듯 숲은 얌전했고, 어미의 자궁 안처럼 따뜻한 빛이 오랜만에 우리에게 쐬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수록 하얗던 풍경은 조금씩 걷히고 있었고, 여러 가지 색채의 조합이 우리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실로 점점 남쪽과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남쪽까지는 아직 수백만 리가 남았을 테였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따스해진 기후에도 이미 어느 정도 희망을 느끼고 있었다.

처음 숲을 헤맬 적처럼 숲속은 춥지 않았지만, 나는 길을 가며 틈틈이 토끼가 보일 때마다 토끼를 사냥했다. 첫째로는 비스켓이 떨어진지 오래라 우리의 허기를 채워 줄 식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그의 몸에 덮을 가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 마리씩, 한 마리씩 잡은 것이 우리가 2/3 지점쯤 왔을 때 그의 몸 여기저기를 털로 뒤덮어주고 있었다. 나는 토끼가죽으로 앞뒤를 덧 댄 가죽조끼를 그에게 만들어주었고, 그의 종아리 한 짝 한 짝에도 토끼가 희생되어 그를 덮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잡은 토끼로는 내 양 손을 감쌌다. 따스하게 입은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는 마음이 뿌듯했다. 온통 토끼털로 무장하고 있으니 이건 정말 이제 인간이 아니라 토끼로 보일 지경이었다.

친구는 조금 기운을 차린 상태였고, 전처럼 심하게 기침을 하지 않았다. 마른 숲 속으로 온화한 햇빛이 비춰오면 그는 기운이 나는지 나보다도 앞 서 힘차게 걸어갔다. 팔을 앞뒤로 휘저으며 열심히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어딘가 웃기고, 또 미소를 자아나게 해서 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깡총깡총 뛰어봐라] 같은 농을 걸기도 했고, 간혹은 산토끼 노래를 그를 위해 불러주기도 했다. 그는 대부분 얼굴이 시뻘개져서 반응했지만, 자꾸 농을 치자 그 마저 익숙해졌는지 내가 산토끼 노래를 부르면, 옳다구나 잘 한다며 오히려 나를 애 취급 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나는 보통은 호탕하게 웃으며 넘어 갔다.

날씨가 조금 걷힌 것뿐이었는데도, 우리는 눈에 띄게 안도하고 눈에 띄게 행복해하고 있었다. 수천 킬로 여정 중 우리는 이제 겨우 몇 십 킬로를 왔을 뿐이었는데, 조금의 그 남하조차도 우리에게 긍정심을 심어주고 있었다. 나는 꿈에 부풀어가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를 왔을 뿐이었는데도, 이미 남쪽의 따뜻하고도 인자로운 나라가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뻗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마치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돛 단 배처럼, 순풍이 불며 우리를 등 뒤에서 희망과 생명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이틀을 꼬박 더 걸었다. 우리는 저절로 하산하고 있었다. 산맥이 점점 끊겨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목표인 도착지에 거의 와간다는 것을 뜻했으며, 더 이상 이 힘겨운 산속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된 다는 것을 의미했다. 국경을 넘었던 날로부터, 어느 샌가 14일이 지나 있었다. 2주를, 우리는 산에서 헤매었지만 결국 산은 우리를 우리의 목적지 마을로 인도해주었다!

밤이 깊어갈 때쯤, 우리는 산 위쪽에서 불빛이 어른거리는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밤에는 새까맣게 잠겨오는 그곳의 도시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산 아래 마을은 여기저기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었고, 어느 집에서는 땔깜을 떼는지 굴뚝으로 연기가 뭉개 뭉개 피어올랐다. 드디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나는 이국이 처음이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살기까지 했던 그와는 달리, 나에게는 다른 나라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곳과는 전혀 달랐다. 길에는 밤에도 불이 켜져 있었고, 마당을 하나씩 낀 집들은 튼튼해 보였으며, 집에서는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단 몇십 킬로만 걸어도, 이렇게 우리와는 사는 모습이 다른 곳이 펼쳐지다니! 나는 그 동안 거기서 내가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같이 살아왔는가를 새삼 통감했다.

우리는 산 아래 펼쳐진 마을 자락을 보며 함께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일찍 우리는 하산할 채비를 했다. 드디어, 가방 안에 고이 모셔뒀던 옷가지들을 꺼낼 수 있었다. 빳빳한 바지, 그리고 품질이 좋은 셔츠, 그리고 지금 신기 위해 동상에 걸리면서 까지도 신지 않았고 깨끗하게 해 온 구두. 걸레짝이 되고 누더기가 되어버린 헌 옷을 벗어버리고 우리는 새 옷들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 우리의 몸에서 옷의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내내 걸쳐져있기만 했던 지긋지긋한 헌 옷을 파묻었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들을 파묻고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옷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깔끔한데, 계속해서 씻지 못한 우리 둘의 얼굴은 너무 지저분하고 거지같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리는 서로를 보고 웃어버렸다. 우선은 씻어야겠다는 생각에,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나 냇물을 찾아 헤맸다. 밝아오는 새벽의 끝자락에 여기저기 개울물을 헤매고 다니던 중,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놀랍게도 우물이 하나 있었다. 어째서 이런 산 중턱에 우물을 파놨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우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물물을 퍼 올려 목욕을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다. 친구는 제대로 씻지 못한지가 고작 2주 가량이었을 테지만, 감옥에서부터 탈옥하고 바로 국경선을 넘은 나는 제대로 씻었던 적이 언제인지 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리 산 중턱이라 할지라도 다 큰 남자가 홀딱 벗고 몸을 씻고 있으면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고 날도 아직은 겨울을 비껴나지 않았기에 목욕을 하는 것은 포기 했다.

우리는 우물물을 퍼 올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 위로 물을 끼얹자 그는 가방 안을 뒤져 비누 한 장을 꺼내주었다. 이때를 위해 가져온 비누였었다. 가방 안에 우리가 넣을 수 있는 물건은 한정되어 있었는데, 그가 식량을 포기하면서 까지 가져온 비누였다. 굶주릴 수는 있어도, 방금 국경선을 넘어온 탈국자 같은 거지 몰골로 다니다가는 ‘나 잡아가시오’ 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거품을 실컷 내며 나는 머리털과 얼굴을 씻어 내었다. 구질구질한 새까만 구정물이 내 몸에 달라붙어 있던 온갖 때와 함께 떨어져 나갔다. 몸에서 흘러나가 땅속으로 스며드는 시꺼먼 땟국물을 보고 있으니 괜스레 감상적이 됐다. 내 과거, 아비를 욕보인 내 악랄함, 내 추한 몰골들이 모두 그 땟국과 섞여 흘러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몸을 씻어 냈다.

그 때였다. 거품이 난 머리 위에 물을 쏟아 부으며 머리를 헹구고 있는 내 목덜미를 친구가 잡아 왔다. 그는 내 목덜미 께를 아래 위로 지분대며 남아있던 거품을 떨쳐내어 주었다. 어미나 유모처럼, 섬세하게 목덜미와 귀 뒷부분, 그리고 턱 주변까지 그는 헹궈주었다. 그러더니 그는 곧 이어 내 코를 손으로 잡아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순간적으로 씻던 몸짓을 멈추고 가만히 있자, 그가 [킁!]하는 소리를 냈다. 아이의 코를 풀어주는 엄마나 하는 행동을 나에게 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나를 애 취급 하는 거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내 말에 그가 청량하게 웃었다.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수감소의 높디높은 벽을 뚫고, 지옥의 늪으로만 보이던 국경선을 넘어, 잔혹하고 매몰차게 우리를 내뱉으려 했던 산맥마저 가로질러 뚫고 온 우리는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극복하고, 지나쳐 왔다는 사실에 어느 정도 기세등등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는 설사 그들이 우리를 추격해온다 하더라도 몇 억의 인구 속에 우리의 자취를 파묻으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안도감을 느꼈고, 그곳보다도 기온이 온화하고 햇빛이 비추는 날씨마저도 우리에겐 너무나도 큰 떨림이 되어주었고 어떠한 희망에 가득 차게 했다.

산자락을 내려가는 발걸음, 발걸음이 가벼웠다. 거의 모든 최악의 상황을 우리는 넘겨 왔다. 이제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국경선을 넘을 때나, 눈보라를 해칠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확신이었다. 그 때 우리는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가정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했다. 다만 우리가 확신했던 것은, 내가 여기서 죽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여기서만큼은 절대 죽고 싶지 않다는 확신 뿐이었다. 그랬기에 발버둥 쳤을 뿐이었다.

마을 어귀에 접어들자 친구는 발걸음을 멈췄다. 가방 안에서 비단 뭉치를 하나 꺼낸 그는 그 안에서 돈을 꺼내주었다. 각각 100원씩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끝까지 간직해야 할, 각자의 비상금이었다. 나는 우선 비상금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고 나중에 여유가 생겼을 때 그 돈을 속옷에 꿰었다. 그는 신발을 벗어 신발 밑창에 100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드디어 마을로 입성했다. 국경을 넘은지 오래였지만 한 번도 이 곳 사람과 뒤섞여보지 못했던 우리가 드디어 그들과 뒤섞이게 되는 것이었다. 시골 마을이라 그런지, 이른 아침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마을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자, 마을은 깨끗했고 도로는 모조리 포장되어 있었다. 멋진 간판들이 여기저기서 간혹 보였다. 내색을 하지 않고 나는 조용히 처음 보는 이국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탄식하게 만든 것은, 이른 아침이라 여기저기서 풍겨 나오는 밥 냄새였다. 아침밥을 하고 있는지 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배고픔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했던 나였는데도, 밥 냄새가 솔솔 풍겨오자 허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식당을 지나칠 때에는 한 끼만 배를 채우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왔는데, 친구의 진지한 표정에 차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리는 마을 중심부로 한참을 내려가 전화를 발견했다. 옆에 앉아있던 아주머니에게 30전을 내면 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다. 친구는 종이쪼가리를 하나 펼쳤고, 거기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전화하는지 묻자 그는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렇지만, 친구는 정말 철저한 준비를 해왔었다. 탈국 할 루트와 방법, 교통편, 온갖 소요 시간과 탈국하고 난 후 우리가 해야 할 일들까지. 그에 비하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없이 맨 몸으로 그만 믿고 나온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전화를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모를 민망함을 느끼고 있었다. 탈국을 하는 와중에도, 또한 탈국 이후에도 나는 지속적으로 친구에게 미안한 감정을 아니 느낄 수가 없었다. 쉽사리 표현할 수 없었고, 표현 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은 우리었기에 나는 끝까지 친구에게 그것을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받지 않아요….]

신이 나서 산을 내려온 우리에게 첫 번째 장애물이 닥쳤다. 그가 극비리에 알아내 온 일종의 브로커의 전화로 연결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세 번이나 연달아 브로커에게 연결을 시도했지만, 모두 다 실패였다. 당시에는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줄 알았는데, 나중에 그가 해준 얘기로는 아예 전화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주머니에게 번번이 30전씩을 내며 전화를 시도한 그의 얼굴이 결국 세 번째부터 눈에 띄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결국 피 같은 돈 90전을 버리고 나서야 그는 전화하기를 포기했다. 당혹스러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주 믿을 만한 소식통을 통해 알아왔거나, 아니면 큰 대가를 치르고 얻어온 전화번호였음에 분명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그의 모습에 나는 일부로 밝은 목소리를 내 그를 토닥였다. 비밀리에 일을 하는 사람이라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유동성이 많을 것이니 반나절이 지난 뒤 다시 시도해보자고 그를 얼렀다. 그는 내 말에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일 없을 거야. 몇 번을 더 확인시켜주고 우리는 전화로부터 뒤를 돌았다.

그런데. 그렇게 그를 어르고 뒤를 돌아서는데,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생각지도 못하게 말문이 턱 막힌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긴 여정의 길목에서 길문이 막힘을 느꼈다. 우리 둘 사이에 순간적으로 침묵이 맴돌았다. 나만 느끼는 것이 아녔던 것임에 분명했다. 그 잠시간의 침묵이, 그 짤막한 침묵이 생각지도 못하게 무게감과 부피감을 늘린 채 우리 안으로 침전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마르고 버석한 손이 손에 잡혔다. 그 손을 잡고 나는 그를 무조건 어딘가로 이끌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어딘가를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우리는 달랐다. 사람들은 제각기 어딘가를 향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목적지가 없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지인 남쪽은, 우주에 있는 은하수만큼이나 멀고도 먼 얘기였다. 당장,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집도, 머무를 곳도, 마음 편히 쉴 곳도, 아는 사람도, 친척도, 반기는 곳도, 아무 곳도 없었다. 그가 가진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서 남쪽으로 갈 수 있는 루트에 대한 도움말을 받는 것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전부였기 때문에, 그 단 하나의 계획이 차단된 그 때 우리는 좀 눈에 띄게 당황해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루 종일 길거리를 쏘다니고 맴돌았다. 손끝이 잘려나갈 것 같고 발이 시뻘겋게 얼어버리는 숲 속보다도 더 한 세상의 차가움을 은연중에 느끼면서. 산은 죽지 않기 위해 도망쳐 나오고, 피하고, 대적하면 됐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인파 속은 다른 의미에서 우리의 존재를 묻어버리고 있었다. 배제되고, 제외되고, 삭제된 우리. 있어서는 안 될 우리. 그 날 하루 밤 낮을 그렇게 어색한 모양을 하고 돌아다니면서, 우리는 어렴풋이 그런 것들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밤이 되어 우리는 다시 산 속으로 올라갔다. 마을에서 우리가 있을 만한 곳을 찾질 못한 것이다. 가장 안전하다고 타이르며 산을 올라갔지만, 기분은 참담했다. 결국 이곳까지 내려와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꼴이라니.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주워온 신문지와 떨어진 나뭇잎으로 몸을 덮고 나는 한 숨도 자지를 못했다. 내일부터는 뭔 일을 해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코 어리석어서는 안 되며, 어리숙 해서도 안 되고, 이곳의 이치를 모르는 무지랭이처럼 행동해서도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고, 다짐을 했다. 눈앞에 펼쳐진 나뭇가지들과 앙상한 나뭇잎들, 그 사이로 요래조래 흔들리는 달을 올려다보며 나는 마음을 새롭게 했다. 또 다른 제2의 탈국이 시작된 것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 김영운. 혀를 씹고, 생각을 계속해서 씹었다.

그리하여 다음 날 아침부터 우리가 한 일은 우리 민족을 찾는 일이었다. 우리가 탈국한 지점으로부터 60킬로미터를 남하해왔지만,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국경선과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는 우리가 여전히 우릴 추격하고 있을 세력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의미기도 했지만, 반면에는 그 우릴 추격하는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도와 줄 조선인들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의미였다. 당국으로부터의 쫓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절대적으로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나는 탈국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상황이었으며, 오랫동안 준비해 온 그도 실제 상황으로 닥치자 계획해왔던 것과는 다른 면모들에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많이 도와 줘 본, 우리 편이 되어줄, 최소한 우리를 잡아가지는 않을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역전으로 나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할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만큼, 그곳은 경비 또한 삼엄한 곳이었다. 그만큼 주의하자고,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해놓고서 또 그런 바보 같은 일은 하고만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어쩔 줄 몰라 하고 불안해하는 우리를 신이 굽이 살폈는지 우리는 역전앞에서 죽치고 있은 지 5분 만에 우리가 찾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기철을 처음 만났을 때, 기철은 우리말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었다. 우리에겐 당 고위층이나, 아니면 극 상류층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평생 구경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물건을, 여기서는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에게로 나아갔다. 친구는 멀찌감치 뒤에서 모르는 사람인 척 하고 있으라고 했고,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 도망을 쳐야한다든지 헤어지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가 밤을 지새웠던 산 속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우리나라 말을 할 줄 아십니까”

나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핸드폰에 대고 [알았어, 그래, 그렇게 하지] 등의 말을 하고 있던 그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나라 말을 할 줄 아십니까?”

나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나라가 어딥니까?”

그의 말에 나는 순간 흔들렸다. 아직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국어를 할 수 있는 부류는 최소한 세 부류였다. 이곳 소수민족인 조선인, 이곳으로 여행을 왔거나 주재 중일 남쪽인, 그리고 나와 같은 곳에서 흘러나온 사람. 세 번째의 경우라면 나는 아주 극단적으로 신중하고 조심해야할 것이다. 나와 같은 처지인 사람일 수도 있지만 탈국자의 경우에는 저렇게 비싼 핸드폰을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다. 탈국자가 아니라면, 탈국자를 잡으러 나온 방위부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철은 내 눈동자의 흔들림을 읽은 듯 했다.

“선을 넘어온 것입니까.”

그가 목소리를 극히 낮춰 지그시 물었다. 그는 이미 내 팔꿈치를 잡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듯, 발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갈 수도, 그를 뿌리치고 달아날 수도 없는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찰나 그가 나의 의중을 읽었다는 듯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많이 도와줘 봤습니다. 우선 이 곳은 사람이 너무 많아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깁시다. 어쩌자고 공안 소굴인 여기까지 나왔소!”

그가 황급히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에서 내 팔꿈치를 뺐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한 번 나를 조용히 위협했다. 공안이 여기저기서 지켜보고 있을테니 큰 행동은 하지 말고 빠르게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서 얘기를 하자고. 그의 말에 나는 일행이 있다고 일렀다. 그는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행을 데리고 이 뒤쪽에 있는 건물 화장실에서 보자고 얘기했다.

나는 서둘러 친구에게 갔다. 갈 곳 없는 무료한 노인네들 사이에 끼어 앉아 불안한 눈동자를 하고 있던 친구에게 다가가자 친구는 눈빛으로 물어왔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나는 긴말 하지 않고 친구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어깨동무를 한 채, 그와 약속을 했던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는 화장실에서 기철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기철은 이런 일을 많이 해본 듯, 신속하고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는 우선 돈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부터 물었다. 먼저 어떻게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지를 알려 달라 요구했지만, 시간이 많지 않고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이유로 그는 그것을 거절했다. 탐탁치 않았지만 우리의 입장이 입장이었기에,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는 것만으로 감사하자 생각하며 그에게 돈을 주기로 입을 맞췄다.

친구가 가방 안에서 1000달러를 꺼냈다. 그것은 큰돈이었다. 우리가 도망쳐 나온 그곳에서나, 도망쳐 도달한 이곳에서나 그것은 큰돈이었다. 기철의 눈이 조금 크게 떠이는 것을 목도했다. 나는 친구가 대체 어디서 그렇게 큰돈을 구했는지 알 수 없었다. 구하기 쉽지 않았던 돈이라는 것은, 기철에게 돈을 건네는 친구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며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기철은 돈을 둥글게 말아 고무줄로 묶은 뒤 가방 바지 주머니 깊숙한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우리는 버스를 타고 그의 집으로 이동했다.

기철의 집은 큰 아파트에 위치해 있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그의 아내와 딸 아들이 우릴 반겼다. 기철은 조선인으로 소수민족에 속해 있었고, 그래서 다른 한족과는 달리 자녀를 두 명까지도 낳을 수 있다고 했다. 기철의 아내는 대륙 특유의 억세고 활달한 기질이 돋보이는 여성으로, 우리와 같은 이들을 많이 대해본 듯 거동이나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물론 그녀가 첫 만남에 나의 외모에 대해 얘기를 하며 반겼을 때는 적잖이 당황했었지만 말이다. 그곳에서는 여성들이 그렇게 남자의 외모를 평가하고 칭찬하는 적이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휴, 당신 어디서 이렇게 미남을 데리고 왔어요. 얼굴이 훤칠하시네!”

기철의 아내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훑어 내리기까지 했다. 순간적으로 몸을 빼며 물러서자,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내 외모 칭찬을 했다. 도가 지나친 그의 칭찬에 오히려 친구가 옆에서 얼굴이 벌개져서 그녀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자기 아내의 이런 이상한 행동에도, 이상하게도 기철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 양반들 시장할 테니, 밥부터 한 가득 차려라.”

기철이 한 밥 얘기에, 나는 두 눈이 번쩍 뜨였다. 기철 부인의 도가 지나친 행동에도 묵묵히 잠들어 있던 정신이 그제야 깨어나는 듯 했다. 갑자기 온 위장이 꾸르륵 거리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부엌으로 들어가 주방 기구들을 꺼내는 기철 부인의 뒷모습을 보자 침샘에서 침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철의 부인의 손에서 씻겨 나가는 하얀 쌀을 보는데,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생쌀 채로 씹어 먹고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정신이 나갔는데, 기철은 이런 속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밥 준비할 동안에 얘기를 하자며 우리를 소파로 앉혔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탈국자들을 어떻게 도와왔는지, 영사관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어떤 방법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귀에는 기철이 하는 말이 한 마디도 들어오지 않고 등 뒤에서 기철 부인이 밥 짓는 소리, 불을 켜는 소리, 칼질하는 소리만 들려오는 것이다. 친구도 사정은 남다르지 않았는지 다리를 떨면서 얘기에 집중하고 있지 못했다.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우리의 사정은 요리가 되어갈수록 더욱 더 심해져, 밥 냄새가 솔솔 풍겨오기 시작하자 나는 엉덩이를 덜썩 거리며 안절부절 못할 지경이 됐다. 감옥에서의 3년, 그리고 산속에서의 2주, 꼬박 굶은 마을에서의 이틀. 제대로 밥을 먹어본 지가 나는 어언 3년 전이었다. 실례가 되는 줄을 알면서도, 나는 식탁에 차려진 반찬을 손으로라도 집어 먹고 싶을 충동에 시달렸다. 그때 그 밥을 기다리는 약 30여 분간의 시간은 국경선을 넘기 위해 3시간을 넘게 기다렸던 그 때의 그 초조한 기다림과도 견줄 수 있을 만큼 나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밥 다됐어요, 밥 먹으로 와요]

아. 그 말이 어찌나 구원자 같은 말이던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친구와 나는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성급한 모습을 보고 기철의 웃음보가 터졌다. 민망함이 느껴져 왔지만, 식탁 위에 차려진 한 가득 상을 보자 도무지 이건 인내심이고 뭐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기철을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 것은, 그렇게도 다급했던 상황에 그래도 지식인으로서 품위와 고상함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에 인내하며 밥 수저를 든 나에게 그가 던진 한 마디였다.

[체면 차리지들 말고, 맘껏 먹어요. 국경 넘어오느라 음식은 구경도 못했을 텐데]

그리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는 한 상 가득 차려진 밥 상위를 쉴 새 없이 노니는 내 양 손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체면 따위 다 버려버리고, 한 손에는 수저, 다른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양손으로 음식물을 흡입했던 것이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음식물의 향긋한 향취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그 달콤함, 3년 동안 단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는 주린 배를 채우느라 나는 음식물을 씹지도 않고 통째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상 차린 밥상은 남아 있는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껄껄 웃으면서 한 그릇 더 퍼주라고 하는 기철의 말에, 입에서 절로 ‘기철이 형님!!!’하는 말이 나오려 했다. 나는 한 그릇을 더 비우고 난 뒤에야 친구와 함께 볼록 나온 배를 두드리며 심신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의 만족스러운 얼굴을 확인한 기철은 이제는 좀 제대로 계획을 짜보자며 우리 둘을 다시 불러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영사관까지 가는 방법은 센양을 거쳐서 가는 방법과 창러를 거쳐서 가는 방법이 있다. 센양을 거쳐서 가는 것이 교통과 거리 면에서 좋기 때문에 탈국자의 대부분이 센양으로 가는 반면, 그 때문에 공안 인력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창러를 거쳐서 가게 되면 상대적으로 소요되는 시간과 물질은 더 들게 되지만 훨씬 잡힐 확률이 줄어들어, 오히려 창러 쪽으로 들어가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기철은 아는 사람 중에 남쪽 외교부 사람과 연결다리 있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외교부로 연결될 수 있는 루트가 있으니, 그쪽으로 연락을 취한 뒤 2주든 3주든 기다려보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찰나.

내내 조용히 있던 친구가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안돼요.”

친구가 말을 거의 해오지 않았던 터라 기철은 줄곧 나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기철의 눈이 조금 크게 떠지더니, 다시 부드러운 시선을 하고 친구에게 되물었다. 뭐가 안 된다는 겁니까.

“센양을 거쳐 가는 것도, 창러를 거쳐 가는 것도 둘 다 안 됩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아까 창러로 갈 경우에 공안을 만날 확률이 적다고 하셨지만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창러 쪽도 탈국 루트가 다 알려져서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원하는 게 뭡니까”

“외교부. 외교부 사람과 바로 연결해주십시오.”

기철의 물음에 친구가 비장한 어투로 대답했다. 기철은 친구의 제안 아닌 제안에 조금 놀라는 눈치였고, 나 또한 친구의 대담한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누가 봐도 외교부 사람과 직접적으로 접촉을 하는 것은 성사되기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친구의 발언에 입을 다물어버린 우리를 찬찬히 보더니 친구는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돈은... 돈은 제가 충분히, 아니 다른 이들보다도 더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 달라를 지불했는데, 모두가 다 가는 루트를 알려주신다면 지불의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기철은 담배를 빼다 물었다. 확실히 친구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돈을 동냥하려고 그 모든 처절한 과정을 겪어온 것이 아녔다. 그리고 우리가 겪어온 과정만이, 그 돈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 과정은 분명 아니었다. 친구는 나에게도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어떻게 그 돈을 얻게 된 것인지.

그가 어떤 방도와 수단을 사용해서 돈을 마련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무엇이 됐든 그것을 위해 그가 큰 희생을 했을 것이라는 거였다. 나는 어느 새 친구와 한 마음, 한 편이 되어 반대편에 앉은 기철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쉽지 않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기철이 한 얘기였다.

“이쪽도 무턱대고 연결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친구는 말을 잘랐다.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필사적이었기에 나오는 행동으로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그럼?”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라는 말에 나는 아까의 친구의 발언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의 놀라움을 느끼며 친구를 쳐다보았다. 기철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의 강한 시선을 받아내며 친구는 더 경악할 만한 얘기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철용.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자 인민군 대장입니다.”

기철은 어리둥절했고, 나는 그를 돌려 세웠다. 성민. 성민아, 나는 그를 여러 번 불렀으나,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기철은 상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지 않는 다는 걸 알았고 한층 진지해지고 집중한 얼굴로 친구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저희 아버지입니다. 확인할 수 없다면 저의 신분증을 보여주겠습니다.”

“성민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면 어느 위치인지 알고 계시겠죠. 제가 이철용 부위원장의 아들인지 기철씨는 모를지 모릅니다. 하지만 외교부는. 분명 알 겁니다.”

“너 아버지를 팔아먹을 생각이야?!!!!!!”

나는 친구의 폭발 같은 발언에 열이 올랐다. 친구는 점점 비장해지고 있었고, 나는 비참해지고 있었다. 옆에서 밤중에 겁도 없이 큰 소리를 내는 나와, 친구의 비장한 표정. 둘의 상황을 보자 하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았는지 기철의 표정 또한 점점 변하고 있었다.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친구가 넘기겠다는 정보가 설마 이런 식의 정보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철용 대장은 평소의 그 싸늘함과 날카로움과는 달리, 아들을 대할 때면 태도가 변하는 사람이었다. 군사 집안에서 태어난 음악과 예술을 사랑하는 아들은 반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를 향한 그의 가문에 흐르는 냉기를 아무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철용 대장은 친구를 번번이 지원하고 친구를 감싸 안으며 아비다운 포용력을 보여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위원장이자 대장으로서의 이철용 대장에게선 상상조차 못하는 모습을 나는 친구를 통해 자주 봐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지금 그의 아들인 친구가 팔아먹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아비인 것도 아닌데 속에서 열불이 튀어 올랐다.

“너 지금 제 정신이야?? 어???? 니가 이철용 대장을 팔겠다는 거야 지금???”

나는 기어코 그의 멱살을 잡아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로 그에게 화를 낸 순간이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치솟은 나와 마찬가지로 친구의 눈에서도 불꽃이 튀고 있었다.

“제 정신이냐고요? 제 정신으로 어떻게 탈국을 합니까!!! 제 정신으로 어떻게 저 공안들과 방위부 사람들을 따돌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이렇게 해서는 남쪽으로 못갑니다!!”

“그래도 말 같은 소리를 해 인마!!! 너 지금 니 아버질 팔겠다는 거야!!”

“팔 겁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그의 멱살을 놓고 힘이 빠진 다리를 지척거리며 주저앉았다. 거실에서 일어난 소란에 기철의 아내와 잠을 자던 어린 아이들이 나와 놀란 토끼 눈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기철은 눈치를 주며 그들을 물렸다. 거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아버지 팔아서라도 전 남쪽 갈 거예요 형.”

그가 악다구를 꽉 깨물었다.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떨구지는 않았다. 그가 하는 말에 나는 맥을 잃었다. 악에 바친 듯, 아버지 팔아서라도 가겠다고 하는 그의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다.

“…정보부든 외교부든 불러 주세요. 아버지 팔아서라도 남쪽 갈 겁니다.”

 

우리는 기철네의 작은 방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누웠다. 얼음덩어리 같던 사방의 벽에 둘러 싸여 지냈던 감옥. 웅크리고 자고 나면 아침에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기가 힘들었던 습하고 싸늘하기만 했던 동굴 안. 주운 신문지와 낙엽으로 대충 몸을 덮고 샀던 산 속. 그런 곳들에 비하면 두 발 뻗고 누울 수 있고, 아랫목으론 따뜻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이 곳은 천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천국 같은 상황을 즐길 수가 없었다. 내 마음은 참담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렇게 잘 수 있는 게 몇 밤이나 될까 싶어 편히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아까 악을 쓰던 친구의 모습이 스쳐갔다. 무엇이 대체 친구를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무엇이 그토록 효자였던 그로 하여금, 아버지의 정보와 국방위원회를 정보를 넘기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인지.

계속 머릿속에서 의문들이 떠올랐고, 나는 달이 머리 위로 한참을 넘어갈 때까지 잠을 못 이루다가 결국, 답답한 마음을 어찌 못해 그를 깨웠다.

“말 좀 하자.”

“…….”

그는 말이 없었지만, 나는 그도 깨어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말 좀 해. 우리 지금 말을 나눠야 돼.”

우리에게는 대화가 필요했다. 우리의 탈국 중에 처음으로 의견이 부딪혔던 것이었다. 강건한 친구의 태도에 결국 기철은 외교부를 아는 친구에게 긴급히 연락을 해보겠다며 일단락을 지었다. 하지만 나는 인정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가 마음을 돌렸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저지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계속 이런 식으로 한다면, 우리가 함께 갈 수 있는 길이 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기에 어떻게든 나는, 우리는, 이것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하지 않고 버티면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

“대체…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우리 힘으로도 충분히 이 곳을 벗어날 수 있는데. 어째서 이철용 대장을…네 아버지를 팔겠다는 거야. 정보를 넘긴다는 것이 어떤 의민지 몰라, 너?”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사실 그의 가족들은 이미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있었던 인간 이하로 취급 받게 되는 교도소, 그곳에. 아니, 어쩌면 벌써 그의 가족들은 처단됐을지도 모르는 일이기는 했다. 고위층이니, 장군이니, 위원장이니 해도, 탈국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더 심한 본보기를 당할 수도 있는 것이 그들이었다. 하지만 혹시나, 혹시나, 그의 가족들이 무사할 수도 있다는 그런 희망을, 그가 나서서 짓밟고 있는 것이었다.

아들이 탈국을 한 것에 이어, 아비에게 얻어왔거나 아비의 이름을 통해 얻어 왔던 내부 기밀정보나 문서를 남쪽에 넘긴다면. 그 후폭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일 것이 분명했다.

“나는…나는 그렇게까지 해서 남쪽에 가고 싶지 않아. 우리가 갈 수 있는 루트가 분명히 있을 거야.”

“…….”

“그러니…생각을 돌려봐. 지금이라도 기철이 외교부에 연락하는 걸 막을 수도 있어.”

“…….”

“성민아….”

“…저는.”

내내 말이 없던 친구가 드디어 말문을 열어왔다. 생각을 돌려보자는 말에 입을 연 그의 말에 나는 몸에 긴장을 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은 나의 바램을 상쇄하는 것이었다.

“전…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남쪽에 들어갈 거예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복잡한 상념에 시달렸다. 이놈이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펄쩍 뛰어올랐다. 그가 자신의 입으로 말한 것처럼, 그는 제 정신이기를 포기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한 자, 한 자 말하는 그의 말에서는 그 어떠한 의지가 느껴져 왔다. 그가 제 정신이기를 포기할 정도로, 그의 아비를 팔게 만들어버릴 정도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력하고도 강렬한 의지. 그를 그렇게 만드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상념에 잠기려는 찰나. 그가 다시 한번 조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형을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도…저는 할 수 있어요.”

“…….”

“그러니 절 미워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누웠다. 나는 그를 부르지도, 그가 한 말의 의미를 되물을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얼떨떨한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그렇게 있었다. 그를 부르려던 말이 입안으로 쏙 들어갔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더 이상 물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내 사지와 내 입을 묶어 왔던 것이다. 또한 알아서는 안 될 것 같고, 알고 싶지도 않다는 불안한 생각이, 내가 그를 잡는 것을 방해해 왔다. 나는 뒤 돌아 누운 그의 뒷모습에 어떠한 말도, 어떠한 손짓도 전하지 않았고 곧이어 억지로 잠에 들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의 에두른 고백을 무시하고 간과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기철의 집에서 나흘간을 묵었다. 태어나서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맛보았다. 거기 있을 때 최고위층이나 마찬가지였던 우리였지만, 시골 마을의 한 평범한 아파트에서 더 발전되고 쾌적한 환경을 접한 것이었다. 더욱 내 조국에 대한 비관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나는 우선 친구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나에게도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주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을 증오하는, 그 끔찍한 감정을. 혈육이 혈육을 증오하고 저주를 퍼붓고 손톱이 다 빠질 때까지 혐오하는 그 인간 같지 않은 끔찍한 감정을. 그것을 겪어본 나였기에, 나는 친구가 이를 겪지 않기를. 또한 그 누구도 친구를 그런 식으로 하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옆에서 본 친구는 너무나도 단호했으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어 보였다. 이미 어느 순간엔가, 오래 오래 전에 마음을 정한 사람인 것 마냥. 친구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본 나에게는 별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 아비도 팔겠다는 친구의 놀라운 발언은 역시나 나에게 어떠한 무거운 책임감과 중압감을 줬던 것이었다. 그런 각오로 임하고 있는 친구에게 그것을 철회하라고 할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하루의 생각할 시간 뒤에 나는 친구를 불러 조용히 일렀다.

[너를 따라 갈 거야. 하지만, 다시는 너에게 그런 선택을 할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러니, 제발 그런 식의 선택은…이번으로 그만 둬.]

나는 나름의 비통함을 느끼며 말을 했고, 친구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말없이 끄덕이는 친구를 보니 맘속에서 무언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물방울보다는 더한 무게감의, 끈적 끈적이고, 점성이 강한 어떤 액체가 철벅, 철벅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형을 위해서라면 그렇게까지도 저는 할 수 있어요.

그 말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가졌던, 다른 중한 의미는 꽉꽉 틈새 없이 포장한 뒤 가장 깊고 손닿지 않는 은밀한 곳에 던져버렸다.

 

나흘 후, 우리는 기철과 함께 나섰다. 기철에게서 얻은 좋은 옷과 구두를 신고.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목욕을 한 우리를 기철은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쳐다보았다. 그의 아내는 더 심했다. 정말 극성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씻고, 나흘 간 편안히 묵고, 나흘 간 꼬박 세끼를 챙겨 먹고 났더니, 우리는 이제 어느 모로

봐도 탈국자 티가 나지 않는 듯 했다. 오히려 더 자신감 있게 걸었다. 공안이 탈국자를 구별하는 방법은 그 몰골이나 옷차림새도 그러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에 눌리고 쫓기는 듯한 불안한 눈빛으로 가장 잘 구별한다고 했다.

우리는 기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감사함의 안부를 전하고 집을 떠났다. 기철이 외교부에 소식통이 있는 친구와 우리를 연결시켜준 것이었다. 우리는 30분 떨어진 시내에 있는 맥도날드 앞에서 그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기철은 우리를 버스 정류소까지 데려준 후, 버스에 태워주었다. 버스 안에 있는 이국인들과 함께 섞여 있는데 별로 어색하지가 않았다. 간혹 공안의 검문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기철은 우리가 심지어 남쪽에서 여행 온 관광객 같아 보인다는 얘기까지 했다. 그의 말에 친구와 나는 더 표정을 밝히 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관광객 티를 내자는 취지였다. 많은 것을 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시내로 들어가며 휘황찬란한 도시의 전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입을 벌리고 구경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저기 날쌔게 쌩쌩 달리는 차들, 번쩍번쩍 거리는 간판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자들의 짧은 치마와 그 아래 드러낸 민다리,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충격이었고 놀라움이었다. 몇 몇은 나의 눈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특히 헐벗고 다니는 여자들이- 대부분은 거의 다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자유의 냄새가 물씬 풍기고 했었다. 말 그대로, 자유의 냄새가.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도 이렇게 자유의 냄새가 나는데, 남쪽으로 가면 얼마나 더 자유롭고 대단할까. 나는 내심 감탄하며 친구와 말을 주고받았다. 저길 봐, 아 저 여자 좀 봐!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친구가 외교부 쪽과 연락이 닿았다고 해요. 당신들의 정보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얘기한 상태이고, 당신 말대로… 외교부 쪽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하루 바삐 만나자고 해서 보통 한 달까지도 걸리는 게 지금 나흘 만에 이뤄진거요. 버스를 타고 시내에 들어가면 역전 광장에서 사람들이 우루루 내릴거요. 거기서 내리지 말고, 그 다음 번에 내려요. 내리면 맥도날드라는 게 보일 거예요. 맥도날드, 라고 미국에서 들여온 음식점이 있소. 빨간색과 노란색의 간판이고, 어떻게 생겼는지는 내 알려드리지. 아, 이 양반이 아신다고? 아 유학을 하고 왔어? 아 그럼 문제 없겠군. 거기서 정확히 3시 5분이오. 맥도날드 앞에 섰다고 가정할 시, 30도 쯤의 위치에 그쪽 사람이 나와있는다고 했소. 내가 이미 당신들 옷차림과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설명을 한 상태이니 쉽사리 알아볼 것이오. 그들과 접선하게 되면, 그러면 끝이오. 그 뒤에부터는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오.]

나는 기철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어느 샌가 시내로 접어든 버스가 시내를 달리고 달려, 역전 광장에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철의 말대로 역전 광장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다 내리고 난 버스가 다음 정거장을 향해 시동을 걸고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공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이까지 도달했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는 한 편, 불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금새 남쪽 정부와 연락이 닿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결과적으론 친구의 주장으로 인해 일이 잘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버스에서 모르는 말로 안내 멘트가 나왔다. 친구와 나는 일어서 내릴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내린 곳에서는, 기철이 열심히 그려준 곳과 똑 같은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아 저게 맥도날드라는 거로군. 그리고 저 광대는 삐에로라는 것이라고 했겠다. 맥도날드의 위치를 확인 한 나는 시계를 확인해 보았다. 3시 5분 전이었다. 앞으로 10여분의 시간이 남은 꼴이었다. 괜히 더 수상하게 어정쩡거리는 것보다 차라리 뭐라도 하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나는 친구를 툭 쳤다.

“맥도날드에서 뭐라도 먹을까?”

“예?”

“저기는 간식 같은 걸 파는 곳이라며. 10분 동안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나보다 더 긴장을 하고 있던 친구가 내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팔을 잡고 이끄는 나의 몸짓에, 그가 맥도날드로 먼저 들어섰다. 처음 보는 요란한 가게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 그가 무얼 먹고 싶냐고 했다. 음식판을 보자 눈에 익은 음식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고르지 못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자, 그는 알아서 골라주겠다며 초콜렛을 입힌 보드라운 아이스크림을 사주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씩 입에 물고 우리는 맥도날드를 나섰다. 시계를 보니 3시 3분이었다. 갑자기 달콤한 아이스크림이고 뭐고 긴장이 되었다. 30도 각도에 있는 쪽을 훑어봤는데, 아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에 누군가가 우리 편이며, 우리를 남쪽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생각하니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눈에 쏙쏙 들어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훑어보고 있는 찰나, 뒤쪽에서 이곳 언어가 들려왔다. 우리를 부르는 듯한 느낌이었기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심장이 덜컹 오장육부를 뚫고 몸 저 끝까지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나는 오금이 저려 오줌을 지린다는 표현이 그런 것을 뜻하는 것임을 생생히 체험할 수 있었다. 머리털이 말 그대로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짙은 청녹의 복장을 한 공안이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었다. 친구는 남쪽 사람으로 위장하려는 듯 우리말을 했지만, 이미 새파랗게 질린 얼굴과 입술이 보였다. 친구의 손목을 덥석 잡고, 우리는 다른 쪽으로 가야한다는 표시를 하며 잡아끌었다.

그 때, 공안이 친구의 다른 손목을 잡아오는 것이었다. 그 때의 공안은 정말 나에게 저승사자 이상의 것이었다. 험상궂기 그지없는 그의 얼굴이 나에게 알 수 없는 말을 해오고 있었다.

“우린 가봐야 해요!”

그렇게 친구의 팔을 잡아끌며 반대편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그 공안이 호루라기를 부르고 소리를 꽥 꽥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사방에서 공안들이 마구잡이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더 이상 무언 갈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머리끝까지 공포심으로 가득 차 온 몸이 터져 나가버릴 것 같았다. 심장이 입 밖으로 토해져 나올 것만 같았다. 고동소리가 쿵쿵 쿵쿵. 이국어로 지껄이는 소리들과 함께 섞여 들어갔다.

우리는 광장을 가로질러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더디기만 한, 두 다리가 원망스러웠다. 이 다리에 날개가 달려있다면!!!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모든 혼신과 모든 염원과 모든 간절함을 다 담아 나는 두 다리를 재촉했고, 두 다리로 땅을 차올렸다. 여기서 붙잡힌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가 그의 아버지를 판 이유도!!!! 아무런 이유가 없다.

뒤쪽에서 공안들이 흩어져서 우리를 따라오고 있었다. 골목길에 이르자, 나는 날아갈 듯 친구의 손목을 붙잡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른쪽으로 돌면서 벽에 거세게 부딪혀 몸이 튕겨 나갈 정도였다. 하지만 아픔은 느끼지 않았다.

헉헉. 헉 헉.

숨을 쉬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내 모든 폐와 심장이, 전력 질주를 하고 있었다. 골목과 골목, 사람들의 없는 틈으로 날쌔게 달려 나갔다. 슬쩍 슬쩍 뒤를 돌아볼 때마다, 다행히도 공안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달음질을 멈출 수는 없었다. 우리는 뛰고, 뛰고, 또 뛰었다. 아마 그 30분간 버스로 왔었던 딱 그만큼의 거리만큼 뛰었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더 이상 뒤쪽에서 공안이 보이지 않은 순간까지도 우리는 달렸다.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보니, 우리는 또 낯선 마을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 멀지는 않았지만 저 편에서 아까 봤던 역전 광장에 있던 시계탑이 보이고 있었다.

낯선 마을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안정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 론가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숨을 곳이 없었다. 다시 차라리 산 속으로 올라가 20도의 추위를 맞는 것이 차라리 낫게 느껴졌다. 하지만 산은 정확히 반대편 쪽에 있었다. 높낮이가 없는 허허벌판에서 우리는 벗겨진 몸이 된 기분으로, 몸을 숨길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보니, 해가 져오고 있었다. 결국 헤매고 헤매이다, 외양간에 몸을 숨겼다.

우리의 침입에 놀란 소가 음메에 하고 울어재꼈다. 계속 진정시키려 하자 더 울어재끼는 바람에 우리는 외양간 구석으로 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조용히 하고 있자 소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지만 거칠었던 숨을 진정 시키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안으로 인해 경기한 심장 고동을 진정 시키는 데는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이. 그리고, 어째서 공안이 그 시간, 딱 그 때에 우리를 덮쳤는가를 유추하며 저려오는 마음은, 그 후로 한참을 진정 시킬 수가 없었다.

너무나도 놀랬던 우리는 외양간에 몸을 숨기고 나서야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야말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물이었다. 경기한 몸이 흘려보내는 그냥 그 어떤 액체였을 뿐이었다.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공포심을 느낀 뒤 자동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무엇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울었다.

 

후유증은 오래됐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차라리 산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팠다. 그곳에서 겪었던 모든 생존의 어려움, 영하 20도의 날씨, 동상, 폐렴, 몸 누일 곳 하나 없는 그곳의 그 모든 것보다 공안이 주는 공포심이 더 클 정도였다. 산속으로 돌아가고 팠던 첫째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리고 둘째 이유는. 사람이었다.

아직도 나는 확언할 수는 없다. 그 때 기철이 우리를 배신하고 팔아넘긴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정보가 새서 공안이 불시에 습격을 한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만약 기철이 우리가 배신을 한 게 아니라면, 나는 우리를 가족처럼 도와줬던 기철에게 백배의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안에게 뒤쫓긴 후 나의 머릿속에 바로 든 생각은 기철이 우리를 배신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를 습격해 온 공안의 모습을 눈앞에서 본 나로서는 그 생각을 좀처럼 떨쳐 내어 버릴 수가 없었다. 외양간 구석에 숨어 기철의 배신을 떠올리고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기철의 집을 다시 알아내 쳐 들어가 그를 죽여버리겠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나는 좀 제 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보다 더 혼란스러워 하는 것은 친구였다. 친구는 배신과 공안의 침입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지 않았다. 그가 힘들어하고, 그가 격하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은 그가 우리 둘을 위험에 몰아넣었다는 생각이었다. 섣불리 기철에게 자신의 신상을 밝히고, 외교부와 연결해줄 것을 요청했던 자신의 모든 행동을 친구는 뼈저리게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후회를 넘어서 심하게 자책하는 친구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우리 둘이 모두 극복해야할 과제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다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한 두 달여간은 사람들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것 같았다. 더 외곽으로, 또 다시 더 외곽으로. 우리가 밤을 지새웠던 곳도 다양했다. 외양간, 곡물 창고, 옥수수밭 사이, 다리 아래.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할 곳들을 우리는 전전하며 지냈다. 약 두 달 간을 그렇게 지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로 후유증은 오래됐다.

다행히도 시간이 점점 지나며, 이렇게 지내다가는 떠돌이생활밖에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지만, 언제까지나 두려워해서는 이름도 없고 신분도 없는 무국적자로 영원히 쫓기는 신세밖에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시 도시로 기어 들어갔다. 전에 갔던 도시는 아니었다. 아직도 공안이 혈안이 된 채 우리를 추격할까봐 그 도시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걷고, 걷고 또 걸어 결국 다른 이름 모를 도시로 우리는 흘러 들어갔다.

짙은 초록 제복만 보면 경기가 나고 심장이 덜컹거렸다. 하지만 오히려 한번 겪어 봐서인지, 조금씩 그들의 모습에 눈이 익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그들이 저승사자보다 더 무서워보였는데, 점점 인간 같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이름 모를 도시에서 조금씩 조금씩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탈국자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신분을 숨겨 말하고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어 냈다. 이제는 정말로 신중해야할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렇게 저렇게 정보들을 얻어 우리가 선택한 것은, 십자가 모양이었다.

 

시내에서는 간혹 가다 십자가 모양이 하늘에 걸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종교에 대해 자세한 것은 몰랐지만, 구원에 관련된 종교라는 것을 친구가 설명해주었다. 구원. 더 이상 남에 의한 구원은 바라지 않았다. 나 자신, 그리고 친구만 믿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여전히 많지 않았다. 우린 처음부터 끝까지 선택이란 건 주어지지 않았던 인간들이었던 것 같다. 탈국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고 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상 생활도 그러했다. 갈 곳이 없어 산을 헤매었다. 그러다 마을로 도착했다. 유일하게 한번, 친구가 선택이라는 것을 ‘외교부’를 통해 했지만, 그 외에 우리가 선택한 것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선택이란 걸 해보기로 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안면이 트인 탈국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말로는 영낙교회라는 곳에서 탈국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하며, 그 교회를 통해 남쪽으로 입국한 탈국자들이 꽤 되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만 해보기로 했다. 영낙교회는 탈국자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교회였다. 보통 교회에는 탈국자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안의 감시가 심해 섣불리 방문했다 오히려 덫에 걸린 쥐새끼처럼 알게 모르게 공안에게 잡혀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랬기 때문에 탈국자들은 영낙교회를 방문할 때 매우 주의를 기울였고 영낙교회에 대해 쉽게 누설하는 자들은 탈국자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처단을 당한다든지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 보통의 선례였었다.

수중에 돈도 하나 없고, 다시 거지 몰골을 하고 있던 우리는 어느 새 여름이 된 뜨거움을 이용해 밤중에 강가에서 몸을 싹 씻고 옷도 빨래를 해, 옷매무새를 단장했다. 그리고 영낙교회에 들어가자, 그들조차도 우리를 탈국자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우리의 겉모습만 보고 교회 안내원이 남쪽 사람이라 생각했던지 매우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던 것이었다.

“목사를 만나러 왔는데요.”

하지만 나의 말에 섞긴 북쪽 식 억양과 사투리를 들은 그 사람은 우리가 탈국자임을 대번에 알아냈고 곧 이어 얼굴 표정마저 싹 굳히며 차가운 말투로 사무적으로 얘기를 했다.

“목사님 지금 나가셨어요. 그리고 이 주변에 공안들 감시가 심해서, 여기 있으면 오히려 위험합니다.”

“다 알고 왔습니다. 만나게 해주십시오.”

“지금 안 계신다니까요?”

“그럼 언제, 어떻게 만날 수 있습니까.”

“다음에 다시 오세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그저 ‘다음엷 오라는 안내원의 싸가지 없는 말투에 울컥 기분이 나빠지려 했지만, 억지로 그것을 눌러 삼키고 나는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목사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그도 들으면 분명,”

“아 목사님 안계신다구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와서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 공안들 또 들이닥쳐요!! 한번 들이닥칠 때마다 교회 안을 얼마나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가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안하무인 같은 언행을 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입에서는 개 같은 년이라는 욕이 막 튀어나오려고 하는 중이었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내가 눈에 보였는지, 그 때 뒤쪽에서 차분한 말투로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목사 여기 있습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목사라는 작자였다. 만나기 한번 힘든 그 목사라는 작자를 열이 오른 나는 씩씩대며 아래위로 훑으며 노려보았다.

 

우리는 교회에서 3킬로 정도 떨어진 한 창고로 안내됐다. 아가씨의 말대로, 교회에 있으면 시도 때도 없이 공안들이 닥쳐오는 바람에 오히려 더 위험한 게 맞다며 목사는 우리를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것이었다. 목사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알 수가 없어 멈춰서고 협박질부터 해댔다. 우리를 공안에게 넘긴다거나, 함정을 파거나 했다면 세상 끝까지라도 당신을 쫓아 눈알을 파버리고 제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주겠다고. 초면부터 거칠고 잔혹하고 무례한 말을 내뱉는 나의 모습을 목사는 허허 웃어 넘겼다. 이런 협박도 많이 당해본 듯,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면, 다시 돌아와 나를 죽여도 좋소’ 라고 말하고는 차에 우리를 태워 창고로 옮겼다.

바깥으로부터 두터운 자물쇠로 닫혀 있던 창고는 안에 들어가자 여러 가지 기계들이 있었다. 또 이런 곳에서 지내게 생겼군, 하고 생각하고 있노라니 목사가 우리를 불러왔다. 커다란 기계를 같이 옮기자고 하기에, 셋이서 힘을 합해 옮기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쪽방으로 향하는 계단이 발견되는 것이었다. 쪽방에는 이미 우리 같은 사정의 탈북자가 4명이나 몸을 숨기고 있었다. 목사는 하루에 한번 매일같이 식사를 넣어주었고, 남쪽 기업가나 자선사업단체 등을 통해서 한 명씩 한 명씩 남쪽으로 탈국자들을 빼돌리는 비밀스러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우리 둘의 모습에 원래 있던 탈국자들은 아무런 흥미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 또한 탈국한 뒤 말도 못할 고초와 고난, 험난한 여정을 겪어 왔던 모양인지 서로서로 대화가 드문드문했고, 남에 대해서 더 이상 알기도, 자신에 대해 알리기도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이 없는 그들에게 우리 또한 대화를 잘 걸지 않았지만 그것 하나는 알고 싶어서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로 여기 있으면 남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나의 말에는 아무도 반응하고 있지 않다가, 저쪽 한 구석에 앉아있던 40대 중반의 노인 같아 보이던 사람이 대꾸를 했다.

“여기서 한 명씩 나가고는 있소.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

알고 봤더니 그들은 여기서 최소한 몇 달에서 최장으로는 1년 넘게 기회만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말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막막해졌다. 앞으로도 몇 년, 몇 달을 여기서 버티고 썩으며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어야하다니. 이게 감옥이 아니고 무엇인가.

답답함이 치밀어 올랐고, 나는 거기서 묵은지 2주 정도가 지나고 나서 목사와 조용히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그를 불러내었다. 그것은 친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 한 단독적인 행동이었다.

“우리는 고위층의 자녀입니다. 남쪽 방위부나 보위부에서 흥미로워할 만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했던 그 정보를 되이용하기로 한 것이었다. 어차피 모 아니면 도였다.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거나, 아니면 우리를 구원하거나. 우리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이것이었고, 우리가 가진 것 또한 이것뿐이었기에 나는 차라리 우리의 이런 위치를 십분 활용하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못 믿는 눈치로 진짜냐고 되묻는 그에게, 친구의 품자락에서 몰래 빼어 온 당 신분증과 나의 연구원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를 설득시키고 그를 자극시켜줄 만한 것들만을 몇 개 골라서 던져주었다. 그쪽이 돌아가는 사정, 연구원에서 하는 연구들, 그리고 친구를 통해 들어왔던 인민당의 내부 정보. 몇 개만 던져줬는데도, 목사는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는지 사색이 되기 시작하더니 내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새치기를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가 노출될 가능성은 더욱 많고 북쪽 경비대에서도 사실 지금 우리를 혈안이 되어 찾고 있을 겁니다. 하루 바삐 남쪽으로 갈 수 있는 방도가 필요합니다. 목사가 그걸 도와줄 수 있을 거라 믿고요.”

목사는 내 말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 시작했고, 굳게 닫힌 입술과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자기가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에게 말을 꺼내면서도 사실 긴가 민가 했는데, 그의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허투루는 아니었는지 몇 날 되지 못해 나를 긴밀하게 불러내어 일이 진행되는 상황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목사의 핸드폰과 교회의 전화는 항상 도청될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막 이곳으로 들어온 남쪽 자선 사업가를 통해서 남쪽 외교부와 직접적으로 연락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역시나 남쪽에서도 매우 다급함을 느끼며 빼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선 우리가 영사관으로 들어 가야지만이 남쪽 정부에서 우리를 보호해주고 우리를 입국시켜줄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곳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영사관으로 가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었고, 우리에게는 목숨보다도 소중한 일이 되었다. 남쪽 정부에서도 이쪽으로 은밀히 연락을 하며 우리를 빨리 가장 안전하게 영사관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했다고 목사는 전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공안 쪽으로 우리의 정보나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많아지고, 그러면 남쪽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 자체가 차단이 되게 되는 것이다. 목사는 열심히 영사관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며칠만 좀 더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에게서 좋은 소식을 들을 날만 손에 꼽으며 우리는 여전히 쪽방 안에서 빛도 못본 채, 매일 넣어주는 끼니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탈국자가 우리의 작은 쪽방에 합류하게 되었다. 새파랗게 젊은 놈이었다. 기껏 해봐야 열아홉, 스물 되어 보이는 쬐깐한 놈이었는데 그래서 그런가, 그는 쪽방 분위기도 파악 못하고 들어오자마자 작은 조동아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탈국을 한 과정을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한 거다. 대부분은 그의 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제각기 할일에 몰두해있거나 잠을 청하거나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별 다른 관심도 없었고, 분위기 파악 못하고 조동아리 놀리는 놈이 꼴 뵈기 싫어 목사가 갖다 준 남쪽 관련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문득 옆에 앉아있던 친구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왜냐면 그 손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활자에서 눈을 뗀 채, 친구의 떨리는 손과, 홍채가 가느다래진 눈동자, 그리고 얼어붙어버린 입술을 차례로 목도했다. 그제서야 내 귀에도, 그 조동아리 가벼운 앳된 신입이 흘리는 말들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기래, 전국 방방곡곡마다 수배문이 붙었다고 하지 않소.

잠시도 조동아리를 가만두지 못하는 그 놈이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찬찬히 그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역적자라고 붙은 것도 아니라, 위대한 수령의 얼굴에 칼을 던진 역적질을 한 대반역자! 대반역자라고 해서 수배문이 붙었는데, 글쎄 그게 탈국한 그 연구원이랑 피아노 치는 그 놈 수배문이 아니라, 그 놈들 사돈의 팔촌까지 소식 듣고 뿔뿔이 흩어진 그 놈들 일가친척들을 수배하는 수배문이라고 하지 뭐요”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나 또한 손바닥에서 미친 듯이 땀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원과 피아노 치는 그 놈. 누가 들어도, 어떻게 들어도 우리 얘기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놈이 하는 얘기들이 채 흡수조차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놈은 계속 말들을 쏟아냈다.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거를 수 없는 말들이 화살이 되어 귀 안으로, 뇌 속까지 팽팽 소리를 내며 꽂혔다.

“지금 국경수비대랑 이쪽에 나와 있는 북쪽 요원들이 가장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게 그 놈들이라 하더라고. 아-니, 아버지가 장군이고 제 1대학 교수고 그런 것들이 뭐가 부족하다고 거길 뛰쳐나와? 지 아비 어미 다 죽이고 사돈의 팔촌까지 다 잡아 죽이는 마당에? 아무튼 정신 나간 놈들이라요. 평양에서 오랜만에 공개처형이 이뤄졌다지 않소. 아무도 들은 적 없소? 총살한 것도 아니라 참수를 시켰다지 아마도?”

빼애애액. 친구의 입에서 질러지는 비명 소리를 나는 들었다. 혼절할 듯이 사지를 떨기 시작하는 그의 몸에, 반대편에 누워있던 40대 남자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가까스로 입을 움직여 친구를 내 몸 뒤에 가리고 ‘춥지, 감기 걸린 것 같다’라고 말을 했다. 이 한 여름에.

머릿속이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뇌수를 숟가락으로 퍽퍽 푸면서 휘젓는 것처럼,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뒤로 숨긴 채 잡은 친구의 팔목에서 느껴져 오는 전신의 떨림. 그것은 떨림이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거의 발작하는 수준으로 친구는 온 몸을 떨어대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저 놈의 조동아리에 주먹을 처박고 목을 쥐어짜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더 우리의 신분의 노출이 된다면, 우리 때문에 잔혹히 목숨을 잃은 목숨들에게 더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

나 또한 전신이 전율해 오는 것을 느꼈다. 벽에 당장에라도 머리를 찧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좁은 쪽방을 뜨는 것도, 그 조동아리를 찢어발기는 것도, 마음 놓고 토하는 것도, 우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 조용히 들어온 목사는 우리를 쪽방에서 끌어냈다. 우리가 쪽방에 들어간 이래, 처음으로 나가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아무런 축하도,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었다. 조동아리만이 우리가 먼저 나가는 것을 시샘하며 구시렁대고 있었다. 조동아리의 잘못은 그가 입을 잘못 놀렸다는 것밖에 없었지만, 나는 여기서 나가 그 놈을 한번이라도 마주치면 그를 딱 죽기 전까지 두들겨 패주겠다고 결심하였다.

친구와 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목사는 우리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눈치 챈 듯 했지만 많은 것은 물어보지 않았다. 운전하러 가며, 그는 간단하게 요약하여 전달할 사항만 전달했다. 오늘 밤을 교회에서 보낸 후, 내일 영사관으로 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중간까지는 목사와 함께 이동을 하기로 했고, 그 이후에는 남쪽 정부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이양될 것이라 했다.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는 없지만, 남쪽 정보원과 접선 한 이후에는 한 숨을 덜어도 된다고 했다.

생각보다도 너무 빨리 찾아온 기회. 그리고 순식간에 열려버린 진정한 탈국, 그리고 입국의 기회. 두 손을 맞잡고 감격하며 뜀박질이라도 쳐야 정상일 우리였다.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그토록 염원해오고 그토록 모든 고난과 고초를 다 견뎌온 이유가, 다 이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우리는 기뻐할 수 없었다. 침통함. 그 이상의 그 무언가가 우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자정이 되기 전에 교회에 도착했다. 목사는 안쪽에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고, 교회 위층에 있는 방을 우리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다시 잠 이룰 수 없는 밤이 시작됐다. 친구의 무표정이 계속 떠올랐다. 사시나무 떨 듯 한 차례의 경련을 지나고 난 친구는 아무런 표정이 없는 채 고요했다. 그가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감정을 소용돌이를 겪고 있을지, 아니면 어떤 죄책감으로 짓밟혀 있을지 나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아버지가 탈국을 했을 때 한 차례 겪었던 과정이었으나, 이제서야 실체를 접한 친구의 마음속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울부짖어도 모자랄 판에,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텁텁한 입술로 창가에 머리를 기댄 친구의 모습을 보니 가슴 한 켠이 먹먹하고 쓰라려 견딜 수가 없어졌다. 그렇게 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어느 샌가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눈을 뜨니 밤은 깊었고, 친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바람 소리마저 들릴 것 같은 고요함 속에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서 몇 개의 음이 들려왔다. 피아노 소리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음악은 들리지 않았다. 간혹 피아노로 몇 개의 음이 눌러지고 있었다. 예배당의 문을 살짝 열자, 다시 한 번 어떤 피아노 음 하나가 들려왔다.

그가 거기 있었다. 건반 위에 올려진 손은, 한 음을 누르고는 떨어져 내렸다. 바깥으로부터 차분히 들어오는 달빛인가 가로등의 빛이 그의 실루엣을 드러나게 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인 그의 모습이 보였고, 눈물이 뚝. 뚝. 떨어져 내리는 것 또한 그림자처럼 드러났다. 그리고 이명처럼 멍하던 귀속으로 그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 안에서 짓눌린 신음 소리가 나왔다. 그의 입에서 들려오는 소린가 생각하기가 무섭게, 나는 예배당 문을 붙잡고 주저앉으려 하는 자유의지를 잃은 내 다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마음이, 찢어졌다. 그의 흐느낌이 내 마음을, 내 심장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아아. 생전 처음 겪어보는 것 같은 고통에 심장이 꿈틀대며 눈물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사람 대 사람으로, 죽지 않고 살아갈 권리를 가진 인간 대 인간으로, 그리고 친구로서,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의 고통과 그의 비통함, 참혹함, 모든 견뎌낼 수 없는 무거운 죄들을 함께 공유하고 있었다. 나의 발걸음 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물로 온통 젖어 번지르르한 얼굴이 달처럼 빛났다. 으으. 아아. 말 같지 않은 신음 소리가 내 입 안에서 음성화되지 못한 채 울려 퍼졌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를 안아주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앞에서 지척거리며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내 다리를 어찌할 수 없었고, 그의 앞에 주저앉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흐느낌이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팔겠다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던 그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예배당 안에는 그의 흐느낌만이 공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아버지를 죽였어요. 내가 아버지를 팔아 죽였어요.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를….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렇게 울부짖는 그의 모습에 어찌 할 바를 모르다, 그의 허리에 팔을 감아 그를 안았다. 미끄러지듯 피아노 의자에서 내려 온 그가 내 품에 안겼다. 그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뿜어져 나오는 모든 그의 감정들에 묶여 나 역시 함께 눈물을 차올리고 있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넘쳐흐르는 눈물, 음성화되어 나오지 않은 채 꺽꺽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지게 하는 흐느낌, 맞닿은 가슴에서 와 닿는 심장 고동, 얼굴을 부비자 그가 흘린 눈물에 흥건해진 내 얼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온갖 세상 끝의 절망, 낭떠러지. 그 모든 것들이 나누어질 뿐이었다.

 

동이 터오를 때쯤, 그는 다시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곡을 하나 연주했다. 나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심지어 내가 내 이름과 내 존재를 잊힌다 해도 지워버릴 수 없는 곡이었다.

 

결국 예배당의 긴 의자에서 쭈그려 누운 채 우리는 목사에게 발견됐다. 아침이 되어 다시 교회로 돌아온 목사는, 우리가 방안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가슴이 철렁하다 못해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며 우리를 타박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챙길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묵묵하게 짐을 싸며 우리는 서로 웃어 보였다.

목사가 가져온 김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우리는 떠날 채비를 마쳤다. 드디어, 정말 이 이국의 땅을 떠나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곳을 떠나 남쪽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정말 한 순간도 더, 이 땅에 있고 싶지 않았다. 우리를 괴롭게 하는 그 모든 기억으로 벗어나 따뜻한 남쪽 땅으로 하루 바삐 날아가고 싶었다. 아직 콧잔등과 눈자위가 퉁퉁 부어, 쌍꺼풀이 사라진 친구의 눈에서도 나는 그러한 소원과 염원을 읽을 수 있었다.

아래쪽에서 목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내려가려 친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때였다. 친구가 버티고 선 것이었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자, 그는 뜨기 힘겨운 눈을 떠 나를 올려다보았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3분만, 아니 1분만 시간을 달라 얘기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말에 나는 또 때 아닌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망설임 없이 바로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만약엡정말 만의 하나 우리가 떨어지게 되거나, 헤어지게 된다면요.”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단호한 목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왔지만, 나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며 조심스레 입을 연 그를 생각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럴 수도 있잖아요. 사람 일은 모르니까……. 우리가 만약 약속도 없이 헤어져서 다시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는 말을 끊고 안쪽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꺼내었다. 신분증을 펼치자, 안쪽에 종이쪽지 하나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어 나에게 건넸고, 나는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 때, 그 상황이 온다면 이걸 펴봐요. 꼭.... 잘 보관해주고 있다가, 펴 봐주세요.”

“…뭔데”

“그냥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나 …전화번호 같은 것들 이예요.”

그의 말에 나는 쪽지의 중함을 알고, 그처럼 역시 내 신분증을 꺼내 그 사이에 끼워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그 사이 내내 우리를 재촉하고 있던 목사의 잔소리에 우리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목사는 꾸중을 하며, 빨리 차에 타라고 했다. 갈 길이 먼데, 여즉 여기서 미적대고 있으면 어쩌냐고 꾸짖는 목소리에, 우리는 죄송하다며 미소를 짓고 차 뒷좌석에 나란히 탔다.

그리고 그가 시동을 걸어 슬슬 출발하려는 때였다.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는 시간이 없는데 누가 자꾸 이렇게 방해를 하는 거냐며, 쯧쯧 혀를 차며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나는 창 밖을 내다보고 있는 친구의 오른손을 잡았다. 나의 접촉에 그의 시선이 느껴져 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보드라운 손등과 둥근 손가락들, 짧게 잘려나간 손톱 등을 어루만졌다. 그런 날은. 그런 상황은 오지 않을 거야. 다시 만나기 어려운 상황 따위 오지 않을 거야. 나는 그에게 그런 얘기들을 마음속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뭐?????!!!!!!”

목사가 지른 소리에 우리 둘은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알았어, …알았어. 빨리 이 곳을 떠야겠군. 말도 안 돼.”

채 마음이 안정을 찾기도 전에, 또 다시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목사의 전화 통화 내용에 나는 다시 우리 위를 덮어오는 검은 먹구름을 느꼈다. 끝까지 우리를 뒤쫓는, 징그럽게 뒤쫓아 오는 그 무언가. 그게 또 다시 우리를 쫓아오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묵고 있던 창고를, 공안이 덮친 것이었다. 안에 있던 탈북자 넷이 고스란히 잡혀 갔는데, 더 문제는 그들이 찾는 것이 그 탈북자들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이었다. 목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설명을 하며, 급시동을 걸어 험악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창고가 알려진 이상, 우리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었다. 그와 나는 손을 꼭 마주잡고, 창밖으로 빠르게 휙휙 지나쳐 가는 풍경을 보았다. 마음속으로 나는 계속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사실 기도를 할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첩첩산중도, 이런 첩첩산중이 다 있나. 끝까지 쫓아와 우리를 괴롭히는 그 세력에, 나는 신이 있는지 조차 의심이 갔다. 아무리 도망자 신세라 한들, 분통이 터졌다. 다시 마주잡은 손 안으로 땀이 가득 차, 그의 손을 내 바지자락에 쓱 닦아줘야만 했다.

외곽지역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시내 복판을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급정거에, 그와 나는 앞좌석으로 머리를 부딪치며 충격을 받았고, 차는 끼이이익 하는 듣기 싫은 마찰음을 내며 멈춰섰다. 급작스런 충격에 앞뒤로 머리를 박아 제 정신이 돌아오기도 전에, 우리는 차 앞유리 문으로 보이는 광경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공안차가 바로 앞에서 우리를 막은 것이었다. 목사가 서둘러 뒤로 후진을 시도했다. 아뿔싸. 이번엔 뒤쪽으로 짙은 청녹색의 공안차가 와서 우리를 막았다. 앞뒤, 사방이 막힌 우리에게는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았다. 차 밖으로 나는 친구의 손을 잡고 튀어 나갔고, 우리 뒤를 바싹 목사가 쫓아 왔다.

어지러운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졌고, 달려 나가는 우리의 뒤통수로는 우리를 잡으러 오는 공안의 외침이 들려 왔다. 한 둘의 숫자가 아녔다. 쥐새끼를 모는 것처럼, 그들은 괴성을 지르며 우리의 뒤를 바짝 쫓아오고 있었고, 그 소리를 들으며 뛰는 다리에는 오금이 저려왔다.

기시감이 몰려왔다. 우리는 한번 이런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도 열 명 가량의 공안이 우리의 뒤를 쫓아왔지만, 결국 우리는 그들에게서 벗어났다! 이번에도, 절대 그들에게 잡혀줄 수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악에 받친 채 골목길을 누비며 그들을 피해 달아나고 있었다.

골목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나란히 뛰는 게 아니라, 내가 그를 이끌고 그가 뒤에서 쫓아오는 형상이었다. 좁고 어지러이 파생되는 골목길의 모습에, 오히려 우리에게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골목이든 들어가서 숨어버리면 미로 같은 골목 가운데에서 그들이 우리를 잡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나는 죽을힘을 다해 달려 나갔다.

그렇게 여덟 번, 아홉 번을 꺾어 골목을 헤쳐 나가, 다시 다른 골목길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쿵.

머릿속을 내리치고 심장을 쥐어흔드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럴 수가. 악문 잇새로 피가 베어 나올 정도였다. 막다른 길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럴 수가...이럴 수가 이럴 수가!!!!!!!!!!!!!!

뒤쪽에서는 여전히 우리를 쫓아오는 공안들의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어찌할 줄 모른 채 절망의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 때였다. 우리에게 바짝 쫓아온 듯, 바로 옆 골목에서 거칠은 이국어가 들려왔다. 하늘을 울리고 땅을 울리는 듯 한 그 소리에 아연실색하여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았던 그 찰나.

목사가 우리 둘을 이끌어, 옆에 있던 건물로 재빠르게 끌어 당겼다. 문은 열려 있지 않았다. 우리 세 사람의 몸만 간신히 숨길 수 있을 정도로의 공간이었다. 제발……제발 신이 있다면,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면, 이미 바닥을 칠 만큼 친 우리를 인간으로 생각해 준다면 제발!!!!! 제발 그들을 그냥 지나가게 해주시오!!!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눈물처럼 눈 주위를 흘러지나 갔다. 한참을 뛰어온 우리의 숨은 턱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숨소리조차도 낼 수가 없었다.

이국의 언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가 이쯤에서 사라졌다는 걸 확신했는지, 더 이상 고함을 지르지 않고 자기네들끼리 말을 주고받으며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흙자락을 밟으며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저벅, 저벅 들려오고 있었다.

끝이다.

끝이다.

두 눈을 질끔 감으며, 모든 희망의 끈을 놓아버리려고 하는 순간. 온갖 땀과 분비물로 흥건히 젖은 내 손을 덥석 무언가가 잡아왔다. 나는 그 손을 느릿하게 내려다보았다. 친구의 손이,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질끔 감았던 눈을 뜨고, 그를 천천히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재생되었다.

고양이처럼 그가 탁 하고 뛰어나가는 그 순간. 그의 머리카락이 공중에 휘날리는 모습. 바람에 흩날리는 그의 셔츠 자락. 그가 내 곁을 떠나며 남긴 그의 체취. 그리고, 그를 붙잡으려 허무하게 공중으로 휘어 올려진 내 공허한 손.

아아아아 안 돼!!!!!!!!!!!!

타다다닥. 그가 뛰어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이국어로 크게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고, 한 놈이 선창하자 여기저기서 괴물처럼 그를 잡으려 울부짖는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다시 한 번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아귀를 힘껏 닫았다. 입안에서 와직끈,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철맛이 입안에 쓰게 맴돌았다. 목사의 신음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목사는 내 입을 막은 손을 빼지 않았다. 나에 못지않게 목사 또한 혼신의 힘을 다 해서, 내 입을 막고 있었고, 내 온 몸의 저항을 막느라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미친놈처럼 온 몸을 뒤틀어 흔들었고, 내 입을 막은 그의 손가락을 몇 개나 먹어 치웠다. 입안에 피가 흥건했다. 목사의 피인지, 내가 혀를 깨문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의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고, 우리의 주변이 조용해지고 있었다. 소음이 잦아드는 그 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나의 배와 온 몸을 꽁꽁 묶고서 나를 막고 있는 목사와 결국 흙바닥으로 뒹굴어 버리고 말았다. 내 입에서 그의 손이 떼어지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땅바닥에 뒹군 목사의 얼굴을 발로 찼다. 그가 코를 잡으며 몸을 웅숭그렸다. 나는 반 미친 상태로 그의 몸을 처절하게 구타했다. 그가 얼굴을 가린 두 손바닥 사이로 피가 흥건히 흘러 나왔을 때야, 나는 몸을 돌려 미친 듯이 뛰어 나갔다.

그를 찾아야 했다. 그가 어디선가 혼자서 불안에 떨며, 몸을 숨긴 채, 내가 그를 찾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테였다. 온갖 골목을 다 쏘다녔다. 나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그의 이름을 우리나라말로 힘껏 울부짖으며 나는 골목 구석구석을 뒤집었다. 미친놈처럼 나를 보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탁탁 몸을 부딪치며 지나갔다.

“성민아!!!!!!!!! 성민아!!!!!!!!! 이성민!!!!!!!!!!!!!!!!!!제발 대답해!!!!제발”

나는 아예 공안을 찾기에 이르렀다. 그가 만에 하나 잡혀 들어갔다면, 나도 함께 잡혀 들어가리라. 나는 그토록 저주하고 두려워했던 짙은 녹색의 의복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줌을 지릴 정도로 두려웠던 공안차도, 공안도,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온 골목을 다 헤집었다. 그 어떤 것이라도 찾기 위해. 하지만 정신없이 헤매다 결국 아까 우리가 공안차를 맞닥뜨렸던 사거리에 도달한 나는, 텅 비어버린 사거리를 보고 그제서야 깨달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안차도. 공안들도. 그리고 그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 될 때까지도 그의 이름을 울부짖고 다니는 나의 모습에 목사가 다가와 설득했다. 그가 잡혀 들어간 것이 맞는 것 같으니, 그를 찾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그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지시오.

이를 악물고 한 얘기에 그는 맥이 풀린 듯, 절망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나에게서 떠나갔다.

사방에서 짙은 어두움이 몰려오고 있었다. 내 곁에 없는 그의 공백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두려워졌다. 땅바닥에 주저앉아, 나는 난생 처음 아이처럼 소리를 내어 통곡했다.

 

.

.

다음 날. 그 다음 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계속 친구를 찾아 헤매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 목사는 죄책감이 들었는지 번번이 나를 찾아와 이제 그만하고 다른 방도를 찾아보자고 설득했다. 나는 번번이 목사를 위협하여 내쫓았다. 가끔은 정신이 나가 목사에게 주먹질을 날렸다.

공안에게 직접 찾아가보기도 했다. 내가 탈국자요, 나를 잡아가시오. 그들 앞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번번이 나는 눈물 흘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우리를 추격하던 그들이, 우습게도 나를 잡지 않았다. 그는 나를 그냥 정신 나간 미친놈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를 괴롭히고 죽일 듯이 몰아세웠던 그들 앞에서 아무리 핏대를 세워도 그들은 나를 밀쳐버리거나 내쫓기만 할 뿐이었다. 하하하, 입에서 공허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나는 혼자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다. 다리 위로 올라가 몇 시간이고 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꺼먼 강물이 어서 오라는 듯 손짓을 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머리를 그 강물에 처박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죽을 수는 없었다. 내 몸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 어딘가에 살아있을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 죽어서는 안 되기에, 죽을 수가 없기에 나는 죽지 못했다.

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내 몸에는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인간으로서 택할 수 있는 그 어떠한 목적도 선택도 없었다. 나에게는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친구를 찾아 헤매는 것 말고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그래서 계속 그를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

나는 지금 서울 외곽의 산자락 아래 한 주택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는 나를 향해 배신자라고 칭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나는 배신자다. 그를 그 땅에 버려두고, 홀로 나는 남쪽 땅을 기어코 밟았다.

하지만 누가 내 심정을 이해하리. 그를 찾지도 못한 채, 그를 묻지도 못한 채, 그 땅을 홀연히 떠나온 나의 심정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8년이라는 세월을 그 넓은 대륙 땅에서 떠돌며 헤매었던 나의 모든 행실은 노력의 결과를 이루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지금 나는 그를 찾지 못해 아직도 내 가슴에 피멍을 맺게 하는 그 죄책감과 그를 향한 모든 우정과 사랑을 더 해 이 글을 써 내려 가고 있다.

8년이라는 방황과 그를 향한 나의 미련과 집착에 종지부를 찍어준 것은, 그가 나에게 주었던 쪽지였다. 나는 그를 내 눈 앞에서 잃은 후, 8년 동안 단 한 번도 그가 준 쪽지를 열어볼 수가 없었다. 그가 내게 쪽지를 주며,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상황에 펴보라고 일렀기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 쪽지를 한 번도 펴보지 않았고, 그의 몸처럼 그의 쪽지를 소중하게 간직했다.

사실 그를 잃고 난 후 2년이 지날 쯤, 나는 그를 지칭하는 뜬소문들을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를 정치범보다도 더 가혹하게 다루는 교화소에서 목격했다는 말을 했고, 누군가는 그가 공개처형 당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가 북송되는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나는 그 중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대륙을 여전히 떠돌이처럼 떠도는 와중에, 우연찮게 그의 먼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그의 먼 친척은, 나처럼 친척의 죄를 대신해 감옥에 구금되어 있다가 탈국을 한 경우였다. 그를 붙잡고 그의 생사를 물었다. 그는 본인도 직접 본 것은 없지만, 그가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렇게 고이 접어 소중히 간직했던 그의 쪽지를 빼내었다. 그를 정말로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그 시점에 아무 쓸모가 없어진 쪽지였지만, 나는 그를 기억해내며 그의 쪽지를 펴보았다. 그 쪽지에 그가 어떤 것을 적었을지. 이미 영영 멀어져버린 우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줬을 그 방법과 전화번호가 과연 무엇이었을지.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며 쪽지를 폈다.

하지만 쪽지에는 내가 전혀 예상 하지 못한 것이 적혀 있었다.

[사모해요]

라는 네 글자. 그것만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단지 나에게 그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네 글자를 보는 순간 나는 폐부로부터 복받쳐 오르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의 그 말을 떠올리는 지금도, 나는 내 눈 안에 가득 찬 눈물을 느낀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상황이 되어서야 간신히 전할 수 있었던 그의 마음. 한 번도 내게 마음 놓고 털어놓지 않은 그의 진심. 하지만 언제나 나를 향했던 그의 시선과 고운 마음. 나를 탈국시키기 위해 조국을 버렸던 다짐. 나를 위해 아비를 버리겠다는 그의 결심. 그리고 그가 나를 위해 버린 그 목숨.

나는 그 네 글자에서 그 모든 것들을 본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나 또한 내 진심을 전한다.

 

아름다웠던 너에게, 내 사랑을.

 

이 글을 그에게 바친다.

 

by little-b | 2011/05/22 12:18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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